최근 외신기자 한분이 21세기에 동아시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하고 묻기에 필자는 주저없이‘연결’이라고 답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유행가 중에 바다가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원망을 담은 노래가 기억난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면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육지이며 다시 말하면 사람들 자신임을 알 수 있다. 현해탄 혹은 태평양 너머로 매일 교역과 통신의 양이 늘어가지만 비무장지대나 유라시아의 큰 땅덩어리 위로는 거의 교류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다.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오랜시간이 걸려서 사람들 사이를 단절시키는 것은 천연 자연물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만든 장벽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편견, 사이비이념, 경제적 격차, 습관…등.
이제는 미약하나마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장벽을 관통하는 움직임들이 시작되고 있다.
우선, 아세안과 동북아의 3개국, 즉 한국·중국·일본의 협의체(이른바 아세안+3)가 정례화되는 시동을 들 수 있다. 이 협의체는 우선적으로 동아시아의 당면현안인 금융시스템안정 같은 문제를 논의하지만 나아가서는 무역자유지역이나 공동통화같은 큰 문제들도 논의하겠으며 더구나 정치·안보 등 고위정치영역도 의제로 할 수 있고 북한까지도 참여시켜 한반도문제도 함께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상이 처음인 것은 아니어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총리가 91년에 제창한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도 있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때에는 미국의 반대로 이 구상이 좌절되었다. 이 협의체의 의미는 물론 정치·경제의 영역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두 큰 지역사이에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할 장이 생기면서 이를 통해 더 활발한 사회·문화적 교류가 가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말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3회의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의 발의로 한·중·일 3개국이 중국의 WHO 가입에 따르는 문제들을 함께 연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 세기에 동아시아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좋은 선례가 되리라 여긴다.(이 문제에 관하여서 미국대사관측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 다음날 필자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는 기회에 그 사실여부를 문의했었는바 그는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단지 현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제도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했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지난 정부 5년간을 통하여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도 미약하나마 조금씩 숨통이 터지기 시작하고 한·일관계도 특히 2년후 2002년의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으리라는 희망을 갖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세기의 가장 큰 ‘세기의 연결’은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교통망의 건설이다. 아시아와 유럽은 실로 하나의 큰 대륙이며 오랜 세월을 통하여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있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활발한 교류는 큰 땅덩어리에 의해 막혀왔고 근래와 와서는 특히 관계가 소원했다. 금년에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상들이 만나는 ASEM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 회의가 두 대륙의 세기적 연결에 획기적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교통망은 단순한 물류망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세계의 마지막 자원보고라는 시베리아와 연변지방의 개발이 활성화될 것이고, 문화교류나 관광등에 비치는 영향도 막대하리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계획은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더 안정되고, 더 평화롭고, 더 여유있는 생활을 보장해 줄 것이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빈자와 부자사이의 연결이다. 동아시아는 나라사이에 빈부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지역이다.
동아시아판 마샬플랜같은 획기적인 발상과 그 실현 없이는 누구도 새 세기에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연결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이다.
/라종일(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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