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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새천년을 맞은 공무원의 사명

뭔가 재빠른 모습, 책임감 있는 자세, 진정서에 대한 성실한 답변, 바지런한 움직임, 막힌곳 없이 펑펑 뚫리는 일들과 사건들. 20여년전 익산시청 직원들 모습은 그랬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해직된 나는 복직을 위하여 그곳을 종종 들리면서 듣는 얘기가 있다.

 

“자네 복직해도 옛날처럼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으니… 복직해서 뭐하나?”라는 소리이다.

 

대관절 뭐가 20여년 전에는 좋았단 말인가? 내무부 직원 등 중앙부처에서는 시청직원을 소나 말처럼 무시하며 지시하였고, 도청에 근무하면 시청직원에게 권위적으로 굴었던 시절이었는데… 그리고 시청직원 역시 동사무소 직원을 새마을운동의 첨병으로 내몰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속에서 시청 직원들도 나름대로 자기 권력을 내세우며 살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새천년을 맞은 요즘 공무원들은 힘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것을 몇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여 보았다.

 

첫째 ‘10월 유신’때나 ‘전두환시절’처럼 강력하게 권력을 받쳐주던 뒷심이 없어져 버린것이 가장 문제인 것 같다. 상사들의 권위가 인격이 기초가 된 존경심 속에서 존재해야 되는데 그동안 줄이나 돈에 의해서 지탱해주던 것이 이제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직원들이나 엘리트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국회의원, 도의원, 시장, 시의원 등 시어머니라는 혹이 가장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시민들 역시 이성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기호 2번만 되면 찍어주는 호남정서가 아무도 그들을 존경하지 못하게 하였다.

 

둘째 요즘 직원들은 호주머니 사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국내 경제사정 때문이겠지만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래 우리는 가장 존경할만한 분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국민이다. 곧 공무원 처우도 개선한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가? 거기다 금번 개혁신당은 그동안 전라북도를 안방처럼 차지하고 있던 존경할 수 없는 괸 물갈이를 반드시 해낼 것으로 나는 믿는다.

 

셋째 직원들을 감원한다는 소식이 오랜 공직자들의 힘을 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해야된다고 본다. 아직도 창의적이지 못하고 윗사람의 지시에 의해서만 기계처럼 일하는 것에 숙달된 직원들을 다루는 사람이 누구인가? 역시 바로 감원 대상이다. 지금이 모든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본다. 하지만 해고의 위험은 언제나 존재해야 되고 또 그것이 일하는 촉진제가 되어야 된다고 본다. 하지만 생년월일에 의해서만 감원 대상을 골라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인사고과에 의해서도 그 대상을 지적해 냈으면 한다.

 

독일의 경우 이미 10년전부터 우리가 은행에 가면 자동 출금기계에서 돈을 찾을때와 같이 손가락으로 투표를 할 수 있다. 전국민이 기계와 컴퓨터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선거제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5년 시와 군을 통합했던 문제가 지금까지도 매끄럽지 못하다. 당시 통합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바로 지역구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정치인들이었다. 그건 통합으로 인한 지역구 존폐가 바로 그들의 뺏지와 직접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행정의 공정성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는 실력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고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의 물갈이가 없다면 전북의 물은 이제 썩고 말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하는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 기자가 두렵지 않고 감사원이 두렵지 않는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본다. 창구 여직원만 친절한 은행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안에서도 친절한 호텔처럼 그런 시청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

 

민주와 자유는 얼핏 생각할때 독재정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서로 비슷한 말로 들린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오히려 반대되는 뜻이 더 강하다. 횡단보도를 스스로 자기의사로 걷는 것은 분명 자유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이다. 그리하여 자유와 민주는 투쟁관계이며 대립관계이고 변증법적 관계이다. 소신은 자유임과 동시에 자신을 지켜주는 통제이다.

 

/황세연(새천년 사이버토론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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