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유형문화재로 국보급 보물이 소장돼 있는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내 효충사의 대대적 정비가 시급하다.
특히, 영내 유물관에 소장된 영성군 고희의 영정과 유품 등은 보물 제7백39호로 문화적 가치가 높은데도 불구, 개인에 의해 수십년째 관리, 방치되고 있어 지역 향토문화사의 재정립을 위한 행정당국의 적극적 지원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내 효충사는 영성군 고희와 그의 적장으로 입계한 영원군 고흥건의 부자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지난 1625년(인조3년)에 건립됐다.
고희는 당시 제원군 고사렴의 아들로 1560년 현재의 부안읍 동중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등 무예가 출중한 인물로 그의 나이 25세때 무과에 급제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33세때인 선전관시절 임진왜란이 일자 선조를 등에 업고 숱한 고생을 겪어가며 충절로서 어가를 수행하고 이듬해 민란이 일자 이를 평정, 관서지방의 군량과 군기를 공급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한 조정에서는 1604년10월에 호성3등공신으로 책봉하고 ‘충근정량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고희서’라는 교지를 하사했다.
당시 이교지의 글은 신제자란 그때의 승정원 승지가 지었으며 글씨는 우리나라의 명필로 석봉 한호가 친필로 작성했다.
1615년(광해7년)에 56세의 일기로 서거하니 조정에서는 고희를 호조판서에 증직하고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였으며 그가 묻힌 하서면 석불산일대를 사패(賜牌)하고 부조의 전을 하사하였다.
이때받은 공신녹권과 영정은 보물로 지난74년 전라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54 55 56호로 지정됐으며 효충사 좌측에는 영전을 모시던 영정각이 있고 바로 앞 우측에는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4백여년에 달하는 고씨일가의 유품및 고문서등 2백15점의 보물이 소장돼 있는 효충사는 문화적 가치는 물론 지역 향토문화사의 소중한 자료임에도 불구 개인에 의해 관리되는등 수십년째 부안군으로 부터 방치되고 있어 이지역을 찾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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