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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여사가 들려주는 설 이야기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설이 예전같지 않다. 우리 전통문화가 서양문물에 밀려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조상을 찾아 예를 차리고, 또 가족과 이웃들과의 정을 나누는 소중한 시절로 보냈던 설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다.

 

전통유가의 큰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60해동안 전통적인 풍습과 가치관을 지켜와야 했던 고단여사가 들려주는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은 농경민족의 문화가 배인 우리만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규방가사집을 내는 등 전통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고단여사와 함께 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닌 명절인지, 또 어떻게 지켜왔는지, 잊혀져가는 설의 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과는 많이 변했지요. 세배객도 줄고 음식장만하는 것도 줄었고… 명절이 많이 간소화됐어요.”

 

고단(高단·78)여사는 시대변화에 따라 우리 전래의 미풍양속도 많이 쇠락하는 느낌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예전에는 명절이면 경제적 여유가 없더라도 훈훈한 인심과 정으로 이웃간의 나눔이 많았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가족주의와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 같다고.

 

고단여사는 변화에 따르는 것이 순리지만 아름다운 전통은 지켜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하루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만하면 일년내내 그러하고, 또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일년내내 배부르다고 했어요.”

 

고단여사는 설은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은 특별한 명절이라고 들려준다. 설에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의 구분없이 일손을 놓고 새옷인 설빔을 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또 집안의 어른들과 이웃 친지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는 데, 세배할때는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축복하는 덕담을 주고 받는다.

 

“설날에는 사돈집사이에서도 문안비를 보내 새해인사를 나눴습니다. 또 설날부터 한동안은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건강하시오’등 좋은 일을 들추어 인사하고 다녔어요.”

 

고단여사는 이밖에도 설에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닭이나 호랑이그림을 그려 벽이나 문옆에 붙여 악귀와 역신을 쫓아내는 풍습도 있었다고 전한다.

 

“일년동안 사용할 조리를 사서 부엌에 매달아두면 1년동안 복을 받는다고 해서 새해 이른아침에 복조리도 팔고 다녔어요. 지금은 형식만 남아 있는데다 그마저도 물질주의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고단여사는 예전에는 정월초하루부터 보름까지의 15일동안이나 잔치가 벌어졌었다고 들려준다. 조상에게 새해를 알리는 차례를 지내고 집안어른과 이웃에게 세배하고 그후부터는 이웃들과 널뛰기 연날리기 윷놀이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가족간에 또 이웃과의 유대를 다졌다.

 

지난 1939년 전남장흥에서 정읍칠보로 시집을 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 고난했던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유교방식에 따라 명절을 지내왔다는 고단여사는 전주향교 전교를 지낸 부군 김환재(金煥在·80)선생 덕분에 전통문화에 대해 자세하게 익힐 수 있었다.

 

“한때는 집안에 손님이 몇이나 들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이제는 자녀들과 가까운 친척정도만 찾아오는 정도예요. 단촐해졌지요.”

 

8남매의 큰며느리로 집안의 대소사를 다 치러내고, 슬하의 7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고단여사는 주부는 늘 가족을 넉넉하게 끌어안을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사람들중에는 명절을 연휴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께 예를 갖추고 가족간의 정을 나누고 또 주위의 이웃들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떡쌀을 담그는 일로부터 명절준비가 시작된다는 고단여사는 요즘은 시장에 가서 쉽고 편리하게 준비할 수 있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해도 정성을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양과자점이나 피자집은 도심의 번화가에 번듯하게 자리하고 떡집은 시장골목안으로 숨어버리는 세태를 보면서 우리문화가 천대받는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자신의 문화를 지키지 못하는 민족은 발전이 없다고 지적한다.

 

“편리만 추구하다보면 정신적 지주조차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것을 잘 지켜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강조하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고단여사는 설 명절을 맞아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천목귀이(賤目貴耳)- 많이 본 것은 천하게 여기고 귀로 듣기만한 것은 귀하게 생각한다’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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