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어느 판이나 판이 돌아가는 원리를 말할 것 같으면, 전통과 새로움이 똑같이 중요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전통을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돌보지 않고 외면해 왔다. 설을 앞둔 지금, 그동안 우리 선조들이 쌓아왔던 공동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부분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래동안 마을이라는 테두리로 묶여진 농촌과 해안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만을 빌기보다는 마을사람 모두의 안녕을 빌고 서로에게 한해의 고단함을 함께할 단결된 마음을 보이며 한해를 시작했다. 특히 쌀농사를 바탕으로한 농경문화에 익숙했던 농촌사람들에게는 한해 마을사람들의 단결된 힘이 곧바로 한해 농사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던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농경문화의 중심이었던 전북지방은 세시풍속이라는 절기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지금과 달리 전통사회에서는 모든 일상생활이 철저하게 24절기에 따라 움직였다. 세시풍속이란 일년을 단위로 일정 기간에 정기적으로 수행하는 자연에 대한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마을사람들 모두의 축제적 의미를 담은 세시풍속은 당산제나 마을굿이라는 제의 호은 놀이로 담아졌다. 당산제나 마을굿은 마을사람들이 주축이 돼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매년 한해가 시작되는 정월에 정기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이런 마을굿은 외래문명이 들어오면서 민간신앙, 토속신앙, 향토신앙 등으로 불리면서 천대받아 오다가 급기야 미신이라고까지 멸시당하게 되었으며 근대화의 억센 바람은 이들을 하나둘씩 사라지게 만들었다.
예전보다 많은 수가 줄었지만 지금도 전국의 도처에 전통문화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풍속들은 그 지방에 따라, 자연환경에 따라, 그 명칭이나 제의(祭儀) 행태 등이 조금씩 다를 뿐, 마을 수호신을 경건히 받들고 축원하는 본래의 내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전북의 당산제나 마을굿도 변화와 소멸을 거쳤지만 설과 정월 대보름에 즈음한 제의(祭儀)들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재연된 세시풍속은 10여개. 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마을별로 치러지는 크고작은 마을축제는 사실 파악하기 어렵다.
널리 알려져 있는 풍속중에 고창 오거리 당산제의 ‘중거리 당산제’가 중요민속자료 14호로, 부안 위도 띠뱃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고, 부안읍 동중리 솟대제가 중요민속자료 19호로, 부안 계화면 대벌리의 쌍조솟대제 ‘솟대’는 道 민속자료 17호로 지정돼 오늘에 까지 전통과 명맥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 세시풍속중에 한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이런 마을굿은 다양하게 펼져지고 있지만 절기상으로 보자면 정월초하루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마을마다 각기 당산제 지내는 날을 정하는데 마을에서 회의를 통해 손(액)없는 날을 받아서 지내거나 고정적으로 정해진 날에 당산굿을 지낸다. 도내의 당산제는 정월 초삿날, 열낫날, 보름날, 열엿세 중에서 특히 정월 보름날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월보름날은 전통 농경사회에서 상원(上元)이라 하여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즉 길고도 모진 겨울을 다 보내고 농사일을 시작하는 절기이고,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의식을 회복해야 집단노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식을 통해 묵은 감정을 씻어내고 풍년을 예축하는 의미를 갖는다.
전북지역의 정월 풍속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지역적인 특성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지만 산간지역과 해안를 끼고 있는 지역간의 차이를 보인다.
소백산맥의 서편기슭인 무주 진안 장수, 임실 순창 남원, 그리고 정읍의 일부지역이 포함되는 산간지역과 금강이남의 익산 옥구 김제 완주 정읍 부안의 일부 평야지역과 옥구 김제 부안 고창지역의 해안과 고군산열도와 해안 도서지역간의 당산의 구조나 형태, 제의 등에서 의미나 형태가 서로 다른 면을 보이고 있는 것.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래의 겨레신앙과도 같은 마을축제는 쇠퇴해 가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도 상당 부분 편의주의에 따라 변형되거나 의례가 생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북대 박물관이 지난 98년에 부안과 고창지역의 당산제를 조사해 발간한 ‘전북해안지역 마을공동체신앙’에 의하면 39개의 당산제 가운데 15개의 당산제가 20∼30여전부터 또는 최근 몇년 사이에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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