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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자연이 함께 숨쉰다] 고냉지 채소단지 방치...폐허로

장수군 장수읍에서 차량으로 20여분 거리인 계북면 매계리 압곡마을은 해발 4백m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두메산골이다. 대부분이 도시로 떠난 이 마을에는 7가구 15명의 주민이 도로에서 겹겹이 산으로 거의 단절된채 살고 있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흐르는 하천에는 3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얼어 붙어 청정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마을 하천제방위의 논에는 인근 산에서 흘러내린 흙더미가 군데군데 수북이 쌓여 이 마을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난 것같았다. 흘러내린 토사가 물길을 막고 떠내려오다 멈춘 폐타이어가 나뒹굴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따라 5분정도 올라간 산중턱. 그 곳은 수만평에 이르는 산전체가 흙더미에 밀려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뻘건 흙이 뒤덮어 주변의 울창한 산림과 대조를 이뤘다. 깊은 산속에 10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축구경기장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98년 5월 장수군이 군유림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민간인에 임대, 고냉지 채소생산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개발한 현장이었다. 공사착공 한달여만에 사업자가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99년 4월에 재착공했으나 그해 6월 또다시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되었다. 사업허가면적 5만1천여평 산은 2만5천여평이 불도저에 의해 사정없이 파헤쳐진 것.

 

더욱 심각한 것은 이같은 상황이 바로 옆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유림인 이곳도 고랭지채소단지를 조성하려는 사업자가 개발하려다 2만여평의 산만 깎아놓은채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급경사를 이루며 계단식으로 깎은 산은 폐타이어로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층층마다 수많은 폐타이어로 고정시켜 마치 공장같아 보였다. 토사가 어지럽힌 급경사는 2년 가까이 손길이 닿지 않아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날 것처럼 위험천만한 모습이었다.

 

산 아래는 공사장에서 내려온 흙과 각종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어 전쟁폐허와 같았다.

 

막대한 산림개발 중단 피해는 마을주민들을 항상 불안에 떨게 했다. 나무가 없어 물을 품지 못하는 산은 비만 오면 엄청난 양의 빗물이 그대로 내려와 마을을 집어삼킬처럼 일대 홍수를 이루기 때문이다.

 

주민 이형득씨(68)는 “지난해 여름 비가 내리자 한꺼번에 물이 쏟아져 하천이 넘쳐 버렸다”면서 “애당초 넘치지 않던 하천이 산을 개발하면서부터 비만 오면 범람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폭 3m, 제방높이 1.5m의 소하천이지만 산중턱에 위치, 웬만한 비에는 좀처럼 넘칠 것같지 않은 제법 큰 또랑이었다.

 

경기도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줬던 수해원인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주변 산림훼손이었다는 점에 비춰 자연훼손이 불러온 재앙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이 현장(일명 말거리봉)은 임진왜란때 경상도에서 넘어오는 왜군을 전라도 주민들이 합세,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었다며 개발로 흔적조차 사라지게 됐다며 또다른 문제점을 안타까워 했다.

 

토사유출과 토사의 농경지유입을 막기위해 현장과 마을 중간에 설치된 2개의 사방댐은 이미 산에서 내려온 흙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2시간 정도의 비만오면 토사로 넘쳐 흘렀다.

 

장계면에서 생산단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조성되면서 산허리가 흉칙스럽게 잘려져 나가버렸다. 조그마한 마을전체가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측은 “무분별한 개발이 환경을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다”면서 “환경을 고려치 않은채 농가소득의 명목으로 진행된 개발은 생태계를 파괴시켜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원상복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관련 장수군 관계자는 “군유림지역은 기존 사업자를 통해 공사를 재개하고 있다”며 “그러나 인접 사유림은 예치된 6백여만원의 복구비로 새로운 사업자에게 개발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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