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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축하만 할 수 없는 당신들

산 기슭 벼랑에 붉은 산복숭아꽃이며 동네 지붕 너머 살구꽃, 푸른 솔숲 아래 진달래 꽃들이 봄바람에 앞을 다투며 피어난다. 이 나라 산천은 참으로 눈이 부시다. 이그러질대로 이그러지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인간들의 삶과는 대조적이기 그지 없다. 저들은 누가 가꾸지도 않았고, 무엇을 열심히 배우지도 않았다. 돈을 벌지도 않았고, 사랑에 애걸복걸 하지도 않았고, 남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어디를 멀리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아무도 처다보지도 않는 사거리에서 비굴하게 웃으며 표를 구걸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저 나무들은 제자리에 서서 저렇듯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저것들은 그저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다.

 

선거를 끝냈다. 생각하면 괴롭고 면면을 보면 싫었다. 누구를 믿을 수도 없었고, 믿는다한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생각 앞에서 나는 절망스러울 뿐이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잘난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우린 수십년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 왔다.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다짐을 하고 맹세를 했다. 그들은 늘 우리들에게 정직과 질서와 겸손과, 절약과 근면과 성실을, 그리고 애국과 애향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에게 보여 준 것은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짓들뿐이었다. 그러나 우린 발등을 찍는 심정으로 그들을 국회로 다시 보내 주었다. 우울하고, 참담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도 우리 같이 못난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고는 한표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 가서 또 무슨 짓들을 했던가. 아,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열 받는다. 다른 것은 다 그만 두자. 평생 동지라고 이마를 마주대고 한솥 밥을 먹다가 공천에서 탈락 되었다고, 어쩌면 그렇게 입장을 싹 바꿔 자기가 몸담았던 당을 빠져나와 얼른 당을 새로 만들어 어제의 자기 당을 그렇게나 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라를 이끌겠다는 어른들이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 소꼽장난질만도 못한 짓거리들을 까놓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는 거짓이고, 사기이고, 인간성을 헌신짝처럼 걷어차버려도 된단 말인가. 지난 선거 동안 그 같잖은 유세들을 들으며 사람들은 “참네, 뭣 묻은개가 뭣 묻은개 나무라고 있네” “사둔 남말하네, 너나 잘혀” 그렇게나 좋은 대학을 나와 공부를 그렇게나 많이 했으면서도 어쩌면 하나 같이 그렇게 유치하고, 비겁하고, 짜잔하고, 째째하고, 초등학교 1학년만도 못한 말들을 그렇게나 서슴없고 뻔뻔스럽게 해대다니, 그러면서도 그렇게 죽일놈 살릴놈 욕을 하면서도 우린 선거를 했고, 그들은 다시 선량이 되어 서울로 갔다.

 

국회의원이 된 당신들은 지금 뛸 것 같고, 날 것 같아 기고만장 하겠지만, 그러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우린 당신을 믿어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찍은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에게 찍은 내 한표가 서늘하게 당신의 등에 박히는 야유일수도 있고, 권력욕에 찌든 당신들의 그 해 묵은 얼굴을 후려치는 채찍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지금 축하 할 수가 없다. 당신에게 표를 던져 놓고도 안심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저 속 깊은 분노를 당신들은 진정 두려워 해야 한다.

 

산마다 꽃들이 우우 피어난다. 보아라. 산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저 산에 들에 언덕에 표를 주었는가. 돈을 주었는가. 권력을 주었는가. 이 나라 산천은 참으로 소박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산과 물, 그리고 나무랄 것 없이 순박한 사람들, 내가 던진 막막한 한표가, 우리들이 던진 괴로운 한표 한표가 저 산천의 꽃으로 피어나 향기가 되고 감동이 되어 이 땅 구석구석에 퍼지기를 진실로 고대하고 나는 희망한다.

 

우리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정치와 권력은, 그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최고 교육환경이다. 정치에서 향기가 나지 않으면 이 땅 아무곳에서도 인간의 향기는 없다. 피어라 저 들에 들꽃아. 저 산에 산꽃들아.

 

/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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