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야성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는 아름다운 영화 ‘피아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홀리 스모크’를 기대해도 좋다.
이 둘은 세계 최고의 여성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인 캠피온의 최근 작품이다. 그녀의 영화는 영상과 서사가 비빔밥처럼 잘 비벼져 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난 사람들에게 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의 흡족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주인공 루스(케이트 윈슬럿)는 인도 여행을 하다가 그곳의 한 신비주의적인 종파에 빠져든다. 그녀는 참다운 삶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딸을 데리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온 그녀의 어머니는 종교적 마술로부터 딸을 구하기 위해 미국인 치료사 피제이(하비 카이텔)를 초빙한다. 영화는 피제이가 영혼 치료를 위해 루스와 함께 사막 한 복판의 외딴집으로 향하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외딴집이란 문명으로부터 소외된 곳인 동시에 그 대안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 늙은 남자와 매력적인 젊은 여성은 서로 갈등하면서 대립하기도 하고 육체의 욕망을 불태우기도 한다. 혼돈과 조화, 남자와 여자, 진실과 거짓 등의 뚜렷한 대조가 사흘 동안 위태롭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후반부에서 상황은 반전된다. 강자인 치료사가 약자인 환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이 그것이다. 그때부터 영화는 긴장 대신에 익살을 보여주는데 치중하는데, 이 부근에서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제인 캠피온은 일단 책에 쓰여진 글보다는 ‘영혼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척한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이미 갈 데까지 가버린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을 그녀는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도로 상징되는 동양주의일까, 아니면 남성적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페미니즘일까. 그 판단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표를 구하기 위해 두 시간 정도 줄을 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시인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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