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17:55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일반기사

[영화가 있어 행복하다] 애니메이션 '존재이유'

<노이놔 바다> 와 네편의 애니메이션

 

해마다 부산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보기위해 부산에서 일주일정도 머물렀었다. 그리고 부러워했었다.

 

4월29일, 부산에서의 경험으로 프래스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좌석에 앉아 편안히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일찌감치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내 앞에 한 열 명쯤 될까 한시간여를 내리쬐는 뜨거운 봄볕을 다 받아내도록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뒤쪽에 서 있는 이들의 불평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내 차례가 되었다. 뭐라고요. 매진이라고요. 나는 말문을 잃었다. 그렇다면 미리 그걸 좀 앞에 써놓을 일이지. 처음 열리는 국제행사라서 그렇겠지. 씁쓸한 웃음을 짓고 그래도 서서라도 봐야지 하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아니 매진이라고 했는데? 영화시작 오분전 극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영화시작 큐, 채 오십명도 되지 않았다.

 

4월 30일, 몇 년 전이던가. <프래데릭 백> 감독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적이 있다. 한폭 수채화같은 그 감동은 내게 충격처럼 기억되어 있다. 다시 또 그와 같은 감동을 수혈 받기 위해 그의 작품 '위대한 강'으로 노 저어 갔다.

 

각각 이미 유수의 영화제에서 큰상들을 받은 5편의 애니메이션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이야기 속의 이야기' '샤를르와 프랑소아' '위대한 강'이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극장 안을 가득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감동은 디즈니랜드식 애니메이션의 상업주의로 한껏 치장한 요란하고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여름 날 폭죽처럼 퍼붓고 가는 소나기가 아니라 마른 대지를 깊숙히 적시며 이 봄 씨앗들을 일깨우고 새싹을 틔워 꽃을 피우는 봄비와도 같이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이 속도감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주변의 따듯하고 느린 것들을 돌이켜 보게 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이미 책을 통하여 알고 있는 헤밍웨이 원작 '노인과 바다' - 시작하는 순간 아! 하고 그 푸른빛의 영상 미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음.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할아버지와 손자의 삶을 통해 인생의 여정을 "노인과 바다'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 '샤를르와 프랑소아' 그리고 무분별한 남획으로 강과 바다의 생명들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한편의 대 서사시로 노래한 '위대한 강'은 애니메이션영화가 존재해야할 그 이유를 알리는 작품들이었다.

 

마지막으로 한편이 남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 찬사를 보내야 할까. <유리 노스태인> 러시아의 감독께 경의를 표한다.

 

/시인 박남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email protected]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