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갔다가 절로 돌아오면서 인근 면소재지 뱀사골 입구의 콘도 목욕탕에 들렀다. 누군가가 물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1m정도는 됨직한 긴 머리카락에 비누칠을 잔뜩 해놓고 감느라고 야단이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몸매가 근육질인 것으로 봐서 여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긴 이곳은 남탕이니까. 내가 들어가니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는데 수염도 제멋대로 자랄만치 자랐다.
이내 거울에 비친 나의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눈길이 갔다. 삭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조금 까칠해보일뿐 모두가 살갗색 그대로 였다. 출가자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르지 못하도록 절집의 법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사명대사가 수염을 기르고 있었던 것은 아마 전쟁중에 작전상(?) 길렀던 것으로 생각된다. 평소에는 깎았을 것이다.
조금 있으려니 왁자지껄 하면서 문이 열린다. 울긋불긋 머리카락을 물들인 사내들 사이로 까까머리가 끼어있다. 근처 절에서 오신 스님인가 하고 인사를 하려는데 눈길 맞추기를 어색해하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들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게면쩍게 곁눈질을 하면서 지나쳤다. 조금 후 노랑 파랑 머리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물속에서 장난을 해댄다. 알고보니 요즘 유행이라는 까까머리를 한 녀석이었다.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늘 규격에 매이고 짜여져 있는 대중생활을 하다보니 저런 파격적인 머리카락을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머리카락을 별스럽게 하는 것은 기존 질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하긴 출가란 말도 알고보면 세상에서 탈출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 정서 때문인지 말총머리, 물들인 머리, 까까머리를 보면서 이념적 동료의식을 느끼게 된다.
상상의 나래는 끝간데가 없다. 내가 만약 세간에 머물고 있었다면(교과서적인 머리는 빼고) 저 세가지중 어떤 매무새를 하고 있었을까? 말총머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아직 수행이 덜 되어서 그런가? 도(道)가 제대로 무르익었다면 요즈음 유행이라는 까까머리 스타일이 더 좋아 보였을텐데.
/원철스님(남원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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