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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論介

논개는 진주목의 관기로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기(義妓)이다.

 

진주성이 왜적에게 짓밟힐 때 기녀인 논개가 적장과 함께 남강에 빠져 산화한 사실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회의 멸시를 받던 기녀의 몸으로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충성심에 감동한 유몽인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채록함으로써 그 사실이 문자화되어 기록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진주 사람들은 그녀의 애국적 행위를 기리고 전하기 위하여,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이렇게 그녀를 추모하는 지역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중의 충신, 효자, 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는 논개의 순국 사실이 빠져 있었다. 보수적인 집권사대부들의 편견 때문에 그녀의 애국충정은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대부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진주성민들은 성이 침략된 날이면 강변에 제단을 차려 그녀의 의혼을 위로하는 한편,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진주성민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경종 이후의 일이었다.

 

진주성민들은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친 논개의 의로운 행위는 마땅히 조정에서 표창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진주성민들의 요청을 받은 경상우병사 최진한은 1721년 경종 1년에 논개의 의열에 대한 조정의 포상을 비변사에 건의하여 공식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의기 논개가 양반 가문으로 우리 고장 장수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에서는 논개의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서 '논개대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축제에 앞서 전야제를 비롯하여 논개선발대회, 푸른음악회, 사과축제, 전국노래자랑 등도 함께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논개의 참뜻을 선양하기보다는 단순한 볼거리나 관광객유치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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