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시절의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의식의 언어들입니다. 애잔하면서도 정겨운 풍경들로부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제 작업의 고투는 충분히 얻는 셈이지요.”
화가 김두해씨의 그림은 담담하고 묵묵하다. 늘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시골마을의 정자나무처럼 넉넉함과 편안함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그 이미지는 20여년 쏟아온 창작의 과정속에서 구축한 그만의 세계다.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3일부터 9일까지 전북예술회관) 지난 98년에 이어지는 다섯번째 전시회지만 전주에서는 5년만의 자리다.
짧지 않은 세월의 흔적이 화폭마다에서 배어난다. 풍경에 대한 미적 태도는 그 변화의 증거다.
작가 자신의 의식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러있던 이런 저런 풍경들은 모든 군더더기를 털어버리고 변화의 힘을 딛고 화폭속에 들어와있다. ‘절제된 언어의 힘’. 이번 근작들이 안고 있는 미덕이다.
“군더더기를 없애는 싸움, 작업의 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갈등은 바로 그것이었다.”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망망한 서해바다위에 배 한척, 시골마을 앞 다리를 사이에 두고 지나가는 버스, 숲속을 달려가는 소녀,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길을 걸어가는 아이업은 아낙, 장에 갔다가 나무 다리를 건너오는 시골 아낙,감을 따는 아이들, 들꽃 가득한 언덕 위의 집, 그리고 소나무와 모악에 이르기까지 절제된 이 풍경들을 얻기위한 창작에의 열정이 얼마나 치열했을까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축약의 진정한 미덕이 더욱 돋보이는 이 근작들은 “한국화가 지닌 여백의 미를 서양화의 어법으로 찾고 싶다.”는 그의 회화적 정체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질감이 자아내는 효과에 주목해온 그의 그림 형식은 또 어떤가. 황토색과 갈색, 녹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것은 철저한 자기 완성의 열정과 공력이다.
그 스스로도 ‘답답할정도’라고 표현하는 열차례에 가까운 화폭 전체의 페인팅과 철저하게 붓으로 완성해내는 터치의 연속. 그러나 수없이 반복된 붓터치의 흔적이 이루어낸 화폭의 두께는 더이상 형식의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 숱한 반복적 기법의 과정속에서 자신이 붙잡고 있는 시간과 풍경의 공간들을 탐색하고 마침내 그것들의 생명을 찾아내 화폭속에 불어넣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현실의 풍경속에서 작의적인 관념의 세계를 충분히 털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시간을 되찾아 주는 미덕속에서는 그 작의성까지도 따뜻하게 안겨진다.
서두르지않고 안으로 삭여 절제하는 아름다움을 획득한 작가의 태도 때문일 터. 그것을 시인 안도현은 ‘느림의 상상력’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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