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군 해리면 왕촌마을에 세운 ‘고향’시비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울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정지용의 고향’
고창군 해리면 왕촌 1리 마을회관 앞에 시비가 세워졌다. 시골마을에 시비가 세워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이 시비에 새겨진 시의 주인이 왕촌마을 태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닐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 시비는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을 늘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왕촌사람들이 뜻을 모아 고향에 바친 선물이다. 고향사랑과 애절한 그리움을 한편의 시에 담아 시비로 세워낸 마을사람들의 고향 사랑.
시비 건립을 추진한 사람은 출판인 박현숙씨(깊은샘 대표). 깊은샘은 월북작가들의 문학작품이 소개되는 일조차 금기시되던 상황에서 꾸준히 월북작가의 해금운동을 벌여온 출판사 중의 하나다. 덕분에 1988년 정지용은 공식 해금되어 우리 문학사속에서 복권될 수 있었다. 이 해금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박씨. 정지용의 시 ‘고향’을 주제로 한 시비를 세운것도 바로 이러한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용은 충북 옥천 출신이지만 우리 문학사속에 온전히 자리잡은 시인이다. 회화성 짙은 ‘향수’가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듯이 그는 이미 한지역의 시인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고향을 일찌기 떠나와 타향살이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늘 고향 땅과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박씨는 “고향을 지키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언제까지나 안고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약속과 희망의 송사가 바로 이 시비이고 바로 그런 뜻을 담아내는데에 지용의 시는 제격이었다”고 소개했다.
문학적 향취로 더욱 따뜻한 고향의 정서를 넉넉하게 안게된 왕촌마을은 조선조 숙종때 처음 터를 잡은 이래 이웃간의 사랑이 깊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촌마을.
‘고샅길에 사람이 가득하고 집을 나서면 몇 발자국 안가 이웃들의 얼굴과 만나는 번성한 마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왕촌마을은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은 이 초라해진 고향땅에 대한 미안함과 애절한 그리움을 담아 이 시비를 세운 것.
시비제막식이 열린 2일 낮 12시 고창 해리면 왕촌마을회관 앞에서는 시비 제막식과 함께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마을 표석과 함께 세워진 ‘고향’시비.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바치는 이 경건한 사랑의 메시지가 고향의 쓸쓸함을 오래도록 훈훈한 정으로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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