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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전북문화 다시보기] (5) 용담댐 수몰지구 대규모 유적 발굴

- 새로운 역사 뒷받침 용담댐 유적 줄줄이 발견
- 도와 수공, 발굴팀 원활한 협조로 발굴작업 연내

 


‘전라북도 선사시대의 변천과정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지난 92년 수몰예정지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진행된 용담댐 수몰지구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는 올해 마무리 발굴조사에서 선사시대의 귀중한 유적이 발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담수예정일을 불과 5개월여를 앞두고 구석기 유적 등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추가발굴조사가 불가피해 지자체와 수공·발굴팀이 절차를 최소화하면서 올연말까지 최종적으로 발굴작업을 마무리하게 됐다.

 

전북도는 문화재청의 추가발굴 허가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했고, 발굴팀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담수일정에 차질이 없는 한도내에서 발굴작업을 추진했다. 이와함께 여의곡 유적에서 발견된 석관묘와 지석묘 등은 용담댐이 건설되고 있는 용담면 송풍리 용담댐 자연학습원 부지내에 이전 복원해 수몰로 인한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게 됐다.
전북대 박물관 발굴팀은 용담댐 수몰지구안의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일대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50여기의 고인돌과 도로, 밭농사 유적 등을 발굴했다.
여의적 유적은 그동안 단편적으로 발굴됐던 유적과 달리 지석묘의 상석이동로로 추정되는 길(도로), 고인돌, 밭농사터, 집터 등이 한자리에서 발굴됐다는 점에서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와 생활상을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특히 여의곡 고인돌은 고창의 고인돌군과 거의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창과는 달리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에, 50여기의 고인돌이 3∼4개의 소그룹형태로 각자 묘역을 형성하고 있어 소공동체나 혈연관계, 족장체제 등 당시의 사회구조를 밝혀줄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여의곡 유적과 함께 정천면 진그늘 마을에서도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규모 구석기 유적이 도내에서는 처음 발견됐다.
올해 발굴된 용담댐 유적은 도내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 유적을 비롯해 청동기시대의 밭과 지석묘의 상석 이동로가 발견됐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전북 서해안에 비해 동부 산악지대의 문화유적조사가 상대적으로 미비해 그 변천상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올해 발굴조사를 통해 동부문화의 시대적 변천상을 제시하게 됐다.

 

이번 조사는 한국의 선사시대 발전과정을 재조명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평가받고 있다. 금강상류지대인 진안은 아래로는 섬진강, 동쪽으로는 황강 및 남강과 연결되는 일종의 지리적 중간지대로 이번 조사는 진안일대의 선사문화 섬진강과 남강의 선사문화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설명해주는 ‘문화적 점이지대’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발굴팀은 연말까지 발굴조사가 마무리 됨에 따라 발굴유물을 학술적으로 검증하는 학술대회나 유물 보존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인터뷰]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김승옥교수
              - 발굴유적 고고학계의 귀중한 자료
              - 용담댐 여의곡 유적 발굴은 개인적으로 행운

 

“구석기 유적의 발굴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취락전모를 밝힐 수 있는 대규모 유적 등 올해 용담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는 고고학계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지난 98년과 올해 용담댐 발굴조사 여의곡유적 발굴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전북대 김승옥교수(고고문화인류학과).

 

고인돌의 상석 이동로로 추정되는 길과 함께 청동기의 사회조직과 계층 문제 등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여의곡 유적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그는 이번 발굴조사 참여가 ‘고고학자에게 평생 한번이나 있음직한 행운’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고인돌군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여의곡유적은 경작지로 이용되면서 땅 속에 묻혀있던 상태였다. ‘발굴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고고학자의 직감’으로 시굴트래치를 이용, 지석묘군을 확인하게 된 것.
발굴작업과 이전복원로 행정기관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는 그는 “자칫 수장될수 있었던 많은 유물들이 제의미를 찾았고, 일부나마 이전복원된 점이 고고학자로서 큰 보람이 느낀다”고 말했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수몰지구 발굴조사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적잖은 아쉬움도 있다.
그는 “발굴작업 초기에 지표조사를 좀더 폭넓고 체계적으로 진행했다면 추가발굴과 담수일정에 쫓기지 않고 좀더 많은 유구를 이전복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법이 강화되는 등 전반적으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문화재가 ‘국민적 자산’이라는 인식이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미 미시건대 고고학전공(석·박사)를 마치고 지난 98년부터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에 재직중이다. 98년 용담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99년에는 서해안 고속도로공사 발굴작업 등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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