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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문학세계, 원광대 천이두 교수

우리 시단의 거성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삼가 명복을 빌면서 그의 시의 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한다.

 

미당은 1936년 21세의 젊은 나이에 김광균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 의 동인으로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화사집> <귀촉도> 를 비롯하여 <신라초> <동천> <질마재신화> <떠돌이의 시> 등등 숱한 시집을 내는 일방 <천지유정> 을 비롯한 많은 산문을 남기고 있다. 이제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애를 간단히 요약해 보기로 한다.

 

그의 첫 시집인 <화사집> 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자화상’에는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라는 귀절이 보인다. 형상 없는 자연 현상인 “바람”에다 “팔할”이라는 숫자를 연결시킴으로써 기묘한 자조적(自嘲的)인 뉘앙스를 풍겨주는 이 귀절은 어려운 식민지시대를 젊은 나이에 겪어내야만 하였던 서정주의 방황하는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애를 예감하고 있는 듯하여 인상깊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자화상’에 보이는 이런 구절에서도 우리는 가령 19세기 프랑스 시인 랭보나 30년대의 이상같은 이들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요절(夭折)의 전조(前兆)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이 시집에 담긴 시편들에서는 랭보나 이상에서와 같은 당돌한 절망이 예사로이 토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당의 시의 생애를 살펴볼 때 분명 그의 생애는 바로 이 바람에 휘둘리는 방황과 광기의 생애였음이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그 바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어느새 그런 젊은 날의 절망과 광기를 꾸준히 다스리며 잠재우는 데 성공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줄기찬 구도적인 편력을 거쳐 신앙적인 안주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구비 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이는 미당의 두 번째 시집 <귀촉도> 에 수록되어 있는 ‘귀촉도’의 끝 연이다. ‘자화상’에서 볼 수 있었던 숨가쁜 호흡은 많이 가시었다. “병든 숫캐”와도 같은 절망적인 헐떡거림도 이제는 많이 가시었다. 그 대신 영영 다시 볼 길 없는 먼 길로 떠나간 임을 향하여 피를 토하며 우는 귀촉도의 모습에 가탁하여 나라 잃은 설움을 애절한 한 가락으로 읊고 있다.

 

방황하는 젊은이로서의 울분, 상실의 설움에서 연유되는 통곡을 거쳐 그는 가령 ‘국화 옆에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자연에의 관조의 자세를 정립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미당은 이제 자연의 순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관조의 자세를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자세는 <서정주시선> 무렵의 절창인 ‘上里果園’에서의 “어둠이 우리 어린 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 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뵈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연에의 조화를 지향하는 경지로 나아간다.

 

<신라초> 무렵에 이르면 불교적인 세계에의 줄기찬 탐험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으며, <동천(冬天)> 에서는 자연의 운행에 순응하려는 삶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해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이는 “동천”이라는 시이다.

 

고도의 상징으로 압축된 이 시에서 “매서운 새”란 시인 자신의 줄기찬 지향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거니와, 그러한 시인의 지향성으로도 어떤 구경(究竟)에 이르면 결국 돌아서 비끼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토로한 시이다. 말하자면 인간에의 줄기찬 탐험을 계속하던 시인 서정주는 마침내 시적 탐험의 한 구경(究竟)에 부딪치는 것이며 그리하여 다시금 범속한 일상의 대자로 하강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른다.

 

미당이 자기 고향 둘레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점검하면서 그 바탕에 함축되어 있는 “신화”를 탐색하고 있는 <질마재 신화> 는 이런 맥락에서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그 이후의 그의 시편들도 대체로 이런 문맥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당의 시의 생애는 줄기찬 구도의 그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의 생애는 우리 문학사의 위대한 기록으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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