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새로운 밀레니엄 이라면서 떠들썩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몇년전만 해도 “송구영신(送舊迎新)” 또는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 쓰인 연하카드를 주고 받는게 인사였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반면에 젊은세대들 사이에선 무료 e-메일 축하카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연말을 보내는 동서양의 풍습은 사뭇 다르다. 악귀를 쫓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시끄러운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서양의 제야 행사는 상당히 소란스럽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해의 마지낙 날을 악마들이 가장 활개를 치는 날로 여겼다. 뉴욕이나 파리, 시드니 등 대도시에서 수십만명이 모여 불꽃놀이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제야행사를 벌이는 것도 악마쫓기에서 유래한다. 특히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의 제야행사는 유명하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광장은 인파로 뒤덮인다. 자정이 1분 남았을 때 사람들은 시계탑을 바라보며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마침내 자정이 되어 새해가 시작되면 ‘올드 랭 사인’을 합창한다. 같은 날 영국 런던의 트래팔가 광장과 세인트 폴 성당 앞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진다. 파리 상젤리제 거리도 이날 초저녁부터 인파로 초만원을 이룬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환호성과 함께 삼페인 축배가 돌려진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하고도 키스를 나눈다.
이에 비해 동양의 제야행사는 조용하고 경건하다. 우리 조상들은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하고 조심하는 날’로 여겼다. 서울은 보신각종, 전주는 풍남문의 타종소리를 들으며 지난해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설계했다. 이러한 타종은 국태민안(國泰民安)하고 모든 중생이 구제받기를 기원하는 불교적 의미를 지녔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제야 전날 대궐과 지방관아에서는 각각 대포와 총을 쏘았다. 이는 새해맞이 축포가 아니라 악귀와 잡귀를 쫓는 고려시대 연종제(年終祭)의 일종인 대나(大儺)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민간에서도 한해 동안의 빚을 깨끗이 청산하고 집안팎 청소와 부뚜막 등을 새로 손질했다. 시름에 겨웠던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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