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자연이자 삶의 질서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다. 낡은 것, 작은 것, 소박한 것 보다는 새로운 것, 큰 것, 화려한 것에 마음을 주는 시대. 옛것은 사라져가고, 새로운 것만 남는다. 이것이 시대적 순리라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시대적 순리를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옛것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 전통과 옛것에 대한 관심으로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그 맥을 잇고, 현대적으로 재생산의 통로를 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옛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다가오는 대상이다. 몸을 한껏 낮추어 이 옛것으로 부터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문화산업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옹기로 세계를 꿈꾸는 옹기장이 이현배
옹기장이 이현배. 그에게 옹기는 질서다. 그가 옹기를 만드는 일은 곧 질서를 찾아가는 일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플라스틱시대를 거쳐 이제는 온갖 첨단소재들이 매끈하고 세련된 품새로 생활 구석구석을 차지해버린 지금, 이 옹기의 질서를 되찾아 어쩌겠다는 말이냐고. 그는 이러한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한다.
“우리 생활속에 옹기의 자리를 찾아주어야죠. 식생활은 우리 삶의 바탕입니다. 우리 식생활을 좀 들여다 보세요. 얼마나 어지러운가. 그러니 우리 가치관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지요. 나는 세상사의 모든 혼돈과 갈등이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늦어지면 옹기 자리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 같애요. 그러니 시기를 놓칠 수 없지요.”
올해 나이 서른 일곱. 옹기일을 시작한 때가 스물 일곱살때이니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앞날 창창하던 서울의 일류호텔 요리사 자리를 그만두고 옹기장이로 들어설때 그는 10년동안만 옹기장이로 살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때의 다짐대로라면 옹기장이로서의 삶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는 셈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도 이 일을 지금 멈출수 가 없게 되었지요. 오히려 이제 모든 일을 옹기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체 단정적으로 자기 입장을 정리하는 일이 없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터. 그 연유를 들어보면 옹기의 미래는 바로 눈앞에 와있다.
진안군 정천면 평장리 363-4 정송마을. 그가 흙을 빚어 옹기를 만들고, 구워 수많은 그릇을 만들어내는 터다. 이곳에 들어온 것이 94년. 전남 벌교의 징광옹기점 박나섭 옹과 경북 문경의 영남요 백산선생 밑에서 흙공부를 한 그는 옛부터 옹기점이 성했던 이 마을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미 옹기점을 지키던 토박이 옹기장이들이 다 떠나버린 곳에 찾아 들어온 젊은 옹기장이는 쌀세가마 반을 주고 사들인 언덕위의 흙집을 고쳐 물이 솔이 바우, 세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흙일을 시작했다. 막힌 가마의 불구멍을 틔우고, 그릇을 굽기 시작하면서 정송마을 옹기굴의 불씨는 되살아났다.
그가 만드는 옹기는 옛것을 재현해내는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생활의 쓰임새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형태의 옹기들이 그의 손에서 빚어지고 구워졌다. 한식 상차림의 반상기 세트부터 온갖 아름다운 접시며, 술잔, 찻잔, 심지어는 화분까지, 그동안 그가 만들어낸 그릇의 종류는 1백 50종에 이른다.
“옹기로 안되는 것은 없어요. 기능성으로도 그렇지만 조형성으로도 그 가능성이 무한하지요. 그것은 곧 흙이 지닌 힘이기도 해요.”호기심 많은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디어를 발휘해 뭇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 호기심은 탁월한 그의 미적 감각과 맞아 떨어져 기상천외한 조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옹기로 만든 커피잔, 특히 에스프레소용으로 만들어진 옹기잔을 보면 그의 미적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에스프레소 잔은 지난 10월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엄지’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에스페르소 잔은 손잡이를 엄지손톱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그 장난스러움에 실린 앙증맞음이나 질박한 옹기의 느낌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옹기를 재현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굳이 현대 생활용품으로서의 옹기를 만들어내는 그는 그만한 댓가(?)를 얻고 있을까.
“사실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옹기를 만드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그것을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일은 더 어렵거든요. 경제적으로는 참담합니다. ”
그는 개인전만해도 여덟번. 서울과 전주에서 옹기로만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판매 코너가 개설되기도 했으며, 이름 꽤나 알려진 서울의 인사동이며 청담동 등의 아트샵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말하자며 그의 손내옹기의 판매 전략은 모두 동원 된셈이다. 그의 표현처럼 길거리로 가지고 나가 판매하는 방법만 빼놓고는. 그러니 ‘손내옹기’의 이름값치고는 뜻밖의 여건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동안에 옹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이 새로워졌어요. 아직도 옹기는 싼것이어야 하고, 세련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옹기를 제대로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거든요. 그래서 승산이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 는 없습니다. ”
얼마전 그는 서울의 한 이름난 호텔의 양식부에 들어가 일주일동안 실습을 했다. 양식 과정과 그릇의 품새를 익히기 위한 시도였다. 그리고 난후 양식 세트를 옹기로 만들어냈다.
호텔에서 이 양식기를 시범적으로 사용해보고 있으나 그의 말에 따르면 여러가지로 한계가 드러나서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옹기가 외국의 식탁위에 놓여지는 상상만으로도 그는 즐거운 것이다.
그는 옹기를 만들면서 느끼는 세상이야기를 담은 책 ‘흙으로 빚는 자유’를 펴냈다. 옹기로 부터 질서를 찾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그는 옹기장이가 왜 행복한지를 일러준다.
‘옹기는 옹구다’
/ 이현배의 옹기철학
이현배씨에게는 그 나름의 ‘옹기철학’이 있다. 그 철학은 옹기에 자신의 삶을 실어버린 바탕이기도 하다. 그 철학의 묘미는 참으로 넓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옹기는 옹구다’에 있다. 그의 철학을 들어보자.
“왜 옹기는 옹구냐? 옹구에는 호흡이 있기 때문이다. 옹기가 학교 칠판에서 분필이 내는 소리라면, 옹구는 할머니와 어머니 삶의 목구멍에서 우러나옴직한 소리다. 그 걸걸해보이는 물건이 아주 맑은 소리를 내는 것도 옹기가 옹구이기 때문이다.”
‘기’와 ‘구’의 글자 한자에서도 의미를 찾는 그의 철학은 삶의 질서로 이어진다. 숨을 쉬는 옹기, 그는 이 옹기의 숨쉬기를 소통이라고 말한다. 안과 밖, 위와 아래, 어제와 오늘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교통한다는 것이다.
그는 옹기를 삶의 소통과 질서로 여긴다. 깨어지는 것이어서 아름답고, 쉬운것이어서 친근한 옹기는 그에게 우주에 다름아니다.
옹기는 몸을 이루는 흙이나 그 위에 바르는 잿물 모두 흔한것.
그는 대부분의 경우 진리는 보편타당성 속에 있고, 이로움은 흔한 가운데 있기 마련이고 그런점에서 본다면 옹기가 좋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희한해야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잃게 된 이유도 바로그러한 인식때문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
그는 또 옹기를 ‘힘’으로 여긴다. 항아리에서 뚝배기를 찾아보고, 그 뚝배기의 몸을 선의 논리가 만들어놓은 길로 따라 올려다보면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그 느낌을 ‘아지랑이처럼, 불꽃처럼 치고 올라가는 힘’이라고 일러준다.
숨을 쉬는 옹기, 역한 기운을 밖으로 뱉어내고 가둘 것은 꼭꼭 가두어 두는 옹기.
그의 삶과 철학은 옹기를 닮아 있다. 그의 곁에서 늘 용기와 위안을 주는 아내 최봉희씨의 삶과 철학 역시 부창부수다. 손내옹기의 미래는 이들 부부의 옹기철학을 딛고 씩씩하게 서있다.
뭇사람들은 넘보지 못할 이 철학에 옹기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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