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학’은 지역문학계의 숲이요, 뒷동산이다
‘전북이란 같은 향토권에서 문학을 하는 우리는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여기 한 갈래로 뜻을 모두었다.’
69년 7월 발행된 ‘전북문학’ 창간사 가운데 일부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지금, 전북문학은 전국적으로 비상업지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순수문예지 2백호’라는 거대한 탑을 쌓았다.
68년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선생이 타계한 이후 시름에 잠겨있던 문인들이 이듬해 뜻을 모아 시작한 전북문학 창간작업은 마땅한 발표의 장이 없었던 지역문학계로는 거의 유일한 창(窓)이었다.
창간당시 전북문인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던 최승범교수(전북대 명예교수)는 66년 일본방문길에 작은 책자로 발행되는 ‘순수문예지’가 차곡차곡 연륜을 쌓아가는 것을 보고 지역문학계에서 ‘전북문학’으로 실천한 것이다.
전북문학을 창간할 즈음 최교수는 의욕적으로 ‘소잡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70년 3월에 전북일보에 기고한 글 ‘소잡지가 주는 것’을 찾아 내보이기도 했다.
창간호에서부터 2백호에 이르는 지금까지 줄곧 반평생을 함께해온 최교수는 창간호나 지금의 2백호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 시작할때나 지금이나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전북문학계의 숲이자, 뒷동산과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동안 전북문학을 통해 기성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들만해도 80여명선에 이른다. 이렇다할 발표지면이 없었던 70∼80년대 전북문학은 ‘지역문학인들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을 해온 셈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전북문학은 향수를 달래는 ‘고향소식’이다. 적잖은 우송료를 부담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이국에서 생활하는 타향살이들에 대한 전북문학의 배려다.
최교수는 다시 2백1호를 준비중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2백호를 바라본 주변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2백1호는 꽤 두꺼운 분량으로, 말하자면 ‘특집호’를 발간할 계획이다. 2백호를 받아온 다른 지역과 외국 문인들이 축하의 글을 보내왔고, 전북문학을 거쳐간 문인들의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서다. 다음달 3일에는 전북문학을 통해 쌓아온 인연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조촐한 자축연도 계획하고 있다.
최교수는 “나이 먹어 이제 기여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평가는 오늘 바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후 전북문학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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