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규(文正奎) 여쭙기를 ‘경계를 당할때에 무엇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으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가지 생각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나니 첫째는 자기의 세운 바 본래 서원(誓願)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 가르치는 본의를 생각하는 것이요, 셋째는 당시의 형편을 살펴서 한편에 치우침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로 대중을 삼은 즉 공부가 매(昧)하지 아니하고 모든 처사가 자연 골라지나니라.’ (대종경 수행품 33장)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과 어떻게 잘 어울려 살아야 하나? 세상만물과의 만남은 어떻게 하면 잘 어울릴 수 있는 가?
늘 물으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며 그것을 복되고 지혜로움을 찾아가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은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理致)로써 건설되고 시비이해(是非利害)의 일로써 운전해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하시었다. 사리연구의 목적에서 밝힌 대종사의 말씀이다.
복되고 지혜로운 삶과 죄되고 얽매이는 삶의 차이는 한 순간의 마음작용에 있음을 깨닫는다. 평화롭고 은혜롭게 살려는 목표는 나를 겸허하고 청정하게 만드는 그것이 서원이라면 나만 위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습관이 욕심인 것이다. 또한 더불어 서원이 있기에 사명감이 나오고 삶의 질서가 자리잡는다. 스승없는 제자없음을 우리는 안다. 스승을 모시고 내 심신작용을 알리고 지도받는 그 가운데 배움이 있고, 겸허함이 있다. 묻고 배우기를 놓치 말아야 한다.
선입관념과 집착처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빈 마음, 중도정신, 평등정신으로 사는 것이 바로 은혜롭고 하나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위 법문이 바로 나를 이끌어 온 힘이 되었고 지금도 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위력인 동시에 함께 잘 사는 길임을 찾았기에 기쁘고 감사하다.
/정상덕교무(원불교전북교구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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