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과 회화의 결합. 절제된 형식속에서 만나는 존재의 의미
화폭위에서 만나는 바느질과 회화의 결합.
서양화가 김수자씨(원광대 교수) 작업의 독창적 이미지는 바느질의 고유한 흔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흔적은 한 작가의 예술적 언어이자 그 자신의 삶이 기록되는 ‘일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70년대 말부터 일관되게 지속해온 바느질 작업은 20여년동안 그의 작품세계를 주도해오면서 이제는 형식적 틀로서의 차원을 벗어나 작가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내용으로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말하자면 바느질과 작가의 관계는 더이상 선택의 과정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통로를 열어가는 언어 그 자체인 것이다.
모처럼 바느질의 작가 김수자씨의 작품전이 전주(19일까지 경원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83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아홉번의 개인전이지만 전주에서는 91년에 이어지는 두번째 자리여서 그의 작업 10년의 과정과 변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회에 내걸린 작품은 20여점. 그의 바느질 작업은 절제되고 단순화된 추상의 형태로 드러나있다. 이들 작품의 주제는 예외없이 ‘일기’다. 그는 몇가지 특징들을 오랫동안 고수해오고 있는데 ‘바느질 작업’이 그 대표적인 예라면 추상작업과 아크릴 액자, 작품의 주제인 ‘일기’ 등도 그의 오랜 동반자이다.
이번 작품들은 그가 이제는 더이상 새로운 변화와 실험적 형식에 몰두하지 않고 자기언어의 깊이를 쌓아가는 과정에 들어서있음을 보여준다.
“추상미술의 본질은 함축과 절제에 있습니다. 근래의 작업은 풀어내는 과정으로부터 벗어나 압축되고 단순화하는 절제의 과정에 놓여있지요. 작업의 연상에서 보면 출발선에 다시 돌아온 셈인데 그 정신의 깊이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김씨는 근래의 작업을 ‘털어냄’으로써 얻어지는 본질적 세계이자 정신성이 강조되는 정적인 세계라고 소개했다.
그의 작품들은 ‘일기’의 틀을 차용함으로써 기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지만 그 내면의 이미지는 깊고 폭넓다. 그의 화폭속에서 추상형으로 드러나있는 기하학적인 일정한 형태는 언제나 같은 형태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그것은 외형과 내면의 세계를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소유와 무소유의 개념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작가는 ‘바느질’이라는 형식을 ‘소통’의 의미이자 한편으로는 ‘명상’의 세계에 몰입해가는 과정의 흔적이라고도 표현했다.
근래 작품들에서는 색채의 변화가 눈에 띈다. 예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광목위에 펼쳐진 색채의 조화는 훨씬 안정되고 깊이가 있다. 검정과 감색이 주조를 이루는 모노톤 이미지, 절제된 색상과 절제된 형태의 결합이 가져오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이즈음 그가 만나고 있는 바느질 작업의 세계다. 작가의 현대미술 작업 20여년 노정이 보여주는 성과는 적지 않지만 씨실과 날실의 결합을 통해 전통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하는 것은 그중에서조 주목을 모으는 대목이다.286-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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