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은 단순히 조선사회의 내적 모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지역질서의 갈등과 모순이 엇물려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동학농민혁명 역사는 국내의 정치사적 상황속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왔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의의를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논의해보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동학농민혁명 1백7주년기념 국제학술대회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각국 학자들의 다각적인 접근과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논의의 틀과 시각을 한단계 진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일부터 3일까지 한중일의 열다섯명 학자들이 주제발표에 나서고 20명이 토론에 참여했으며 2백여명이 넘는 국내외 학자들이 함께한 국제학술대회가 3일 충청도지역의 답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학술대회의 실질적인 성과는 2일 오전 주제 발표에 이어진 종합토론으로 정리됐다. 종합토론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국내의 치원을 극복, 동아시아와 세계와 연대해 그 의미를 조명하고 계승 발전시켜나가야한다는데 듯을 모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1백여년전의 동학농민혁명을 현재적 의미에서 찾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대 박명규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현실이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공동으로 인식한 것이 이번 대회의 가장 소중한 결실”이라고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를 평가했다.
황한식교수(부산대)는 동학농민혁명의 집강소 설치는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선 지방자치제의 성격을 갖는다고 평가한뒤 “부마항쟁, 광주항쟁 등 지역의 민중운동 기념사업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보하고, 연대를 통해 민중운동의 의미를 확산시켜나가는 방안”을 제안했다.
종합토론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동학농민 학살’를 주제발표한 이노우에 가쓰오교수(홋카이도대)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동학농민군 학살명령이 내려진 과정이 일본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이노우에교수는 “방위청 사료 등에서 명령계통의 직접적인 언급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조선병의 응원을 내세우면서 결국 학살을 명령’한 자료는 추정이 가능하다”며 이에 대한 연구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원인에는 일본의 재벌(자본가)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학농민군 희생에 대한 일본측 배상요구에 대해 이이화소장(역사문제연구소)은 “국내에서조차 국가유공자를 1895년 이후의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동학농민혁명 희생자의 명예가 제대로 구제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며 “게다가 정신대문제 등 농민혁명 이후에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청산절차가 이뤄지지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과와 청산을 위해서는 입증할 사료발굴 등 연구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이 정치권력에 의해 변모해가는 과정을 분석한 ‘동학농민혁명 인식의 변화와 과제’(이진영), 동학농민혁명과 한국여성의 근대의식 형성과정을 논한 ‘동학·동학농민전쟁과 여성’(김정인)은 동학농민혁명 연구 작업의 새로운 접근이자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일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함께한 만찬장은 한중일 연구자와 시민운동가들의 연대와 교류의 의의가 한층 돋보인 자리가 되었다. 학술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올바른 역사에 대한 인식’에 공감한 양심적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의 만남, 그를 통해 탄탄하게 다져진 연대의식의 힘, 바로 그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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