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큰 상이 주어져 뜻밖입니다”. 제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기념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장세훈씨(42)는 부모의 사랑을 느낀대로 종이위에 옮긴 것이 후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조선초기 목판본인 ‘부모은중경구’를 한문과 한글로 각각 표현한 4개의 작품을 출품한 장씨는 그 중 한글과 전각이 옛종이에 어우러진 작품이 대상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해마다 수백개의 공모전이 열리지만 상투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형화 돼있어요.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는 공모전 성격을 띠면서도 작품내용이나 크기를 규정해놓지 않아 작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씨는 실험성과 창작력을 독려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이 호기심을 자극해 출품했다고 밝혔다.
“젊은 날의 서예는 아름답고 예쁜 글씨만 추구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글씨에 덮여있던 허울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가며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을 숙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장씨는 서예를 ‘작가의 내재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장씨의 서예 입문기는 집안 분위기와 밀접하다. 조부가 서당 훈장이어서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붓을 잡았던 것.
“할아버지께서 서예를 처음 접하게 했지만 그 후론 고전이 교본이자 스승이었죠. 선현들의 글과 서책을 다독하며 스스로 서예를 익히는 편이었습니다. 명망있는 스승밑에서 한 번에 배울 내용을 저는 홀로 열 번이상 반복해야 했으니 서예 공부가 더디고 어려웠죠.”
고전에 대한 다독(多讀)이 서예를 익히는 원천이었다는 장씨는 주변 서예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글쓰는 모습을 견학하거나 전시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경기도청을 거쳐 96년부터 경기도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씨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는 아직 젊고 모자란 점이 많다”며 “서예의 전통을 온전하게 공부한 뒤 한글을 한문초서처럼 흘려쓰기를 시도하는 등 조형성이나 회화요소가 강한 서양화와 서예와의 결합을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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