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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창작현장] 사곡리 미술촌 사람들



 

땡볕더위에 세상이 숨죽인 23일 오후 임실군 덕치면 사곡리 사곡초등학교. 2층짜리 교사로 발을 들여 놓으면 색다른 표지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교실 입구에 있어야 할 ‘학년·반’표지 대신 ‘주리의 방’‘준호방’등 문패가 줄지어 있는 것.

작업실로 바뀌어진 각 교실은 완성된 그림과 작업중인 화판과 화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학교의 어른이 있는 곳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던 교장실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명패는 그대로 남겨놓은 채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몇몇 서양화가들이 99년 폐교된 사곡초등학교를 임대해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곡리 미술촌’.

이곳에 입주한(?) 미술인은 조헌(38)·김수귀(37)·김준호(36)·이주리(31)·임승한(31) 등 서양화가 5명. 이들은 원광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다.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양화가의 모임 ‘중작파’회원이기도 하다. 여기에  중견서예가 하수정씨(60, 김준호씨의 어머니)도 2층 한켠에 작업공간을 마련, 예술촌 일원으로 가세했다.

이들은 요즘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캔버스와 씨름을 벌이고 있다. 붓질작업도 당연히 늦추어지지 않는다. 개인전이나 연립전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 마음 바쁠일이 없지만 오는 겨울께 열게될 ‘사곡전’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사곡전’은 이들이 지난 99년 9월부터 사곡초교에서 작업을 해오면서 자신들의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함께 보여주는 공개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지난해 12월 처음 연 전시회다. 이들은 거창한 목적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급작스럽게 시작한 자리여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는 것이 이들의 자평.

올해 두번째 무대는 보다 알차고 부끄럽지 않은 그림을 내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도 이러한 자성에서 비롯됐다. 그런 이유로 요즘 이곳의 밤낮은 바뀌어 있다. 더위를 피해 낮에는 쉬고 해가 산밑으로 숨을 때부터 동틀녁까지 작업을 하는 것. 빨리 잠을 청해야 새벽 4시다.

“내 그림만 보는 것보다 동료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자성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작업스타일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고 받은 선생인 셈이죠”. 맏형격인 조씨의 말처럼 같은 서양화를 전공하면서도 이들은 표현기법이나 소재, 재료 등에서 각자의 독립된 영역을 고수한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형식부터 주제와 표현기법까지 서로 다른 예술을 통해 이들이 얻는 것은 소중하다. 창작을 부추기는 자극과 격려는 물론, 선후배로 뭉쳐진 친목이 두터워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거동락(?)하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화폭의 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이들은 서로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의식의 세계를 교류하게 된다고 말한다.

누드화를 많이 그렸던 이씨가 조씨처럼 인간의 내면세계와 심상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다루거나 두 김씨가 아크릴로 화폭을 채우는 것도 관심사다.

도심 한복판의 작업실이 주는 번잡함을 피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고민하기 위해 한적한 폐교로 찾아든 이들. 창작활동에 몰두하며 여름을 이기는 젊은 작가들이 있는 곳. 여름을 잊은 ‘사곡리 미술촌’사람들로 사곡리의 밤이 도시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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