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비빔밥과 한정식, 술, 부채, 한지, 서예, 판소리와 소리가락. 이러한 단어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어떤 인터넷 웹 싸이트(web site)에서 검색하더라도 그 결과는 전북의 도시들일 것이다. 풍남제, 대사습 놀이, 종이축제, 소리축제 등의 행사를 검색한다면 그 곳은 더욱 자명해진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런 고유한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곳이 전북의 도시들이다.
'문화'란 "인간의 공동사회가 이룩하여 그 구성원이 함께 누리는, 가치있는 삶의 양식 및 표현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정의는, 문화의 주체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고, 방법은 '함께 누리는' 것이며, 대상은 '가치 있는 삶의 양식 및 표현체계'라는 문화의 속성을 잘 말해 준다. 또한 이 정의에는 문화의 일상성(日常性), 당시성(當時性), 당소성(當所性)의 특성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이 아니다, 문화는 문화특구로 지정된 어느 특정구역을 방문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누리는 당시의 당소의 일상의 삶 자체이다.
전북의 도시라는 우리의 공동사회에서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나물 등의 먹거리 재료가 풍성하므로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맛있는 비빔밥을 해 먹고 있으며,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자라므로, 웬만한 집에서도 서예를 즐기면서 벽에는 서예 진품을 걸어두고 있고, 동네 골목에서는 노인들의 소리가락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북의 도시에서는 이러한 먹거리, 서예, 판소리 등이 특별한 문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우리의 일상 생활인 것이다.
외지인들이 전북지역을 방문했을 때 유물과 같은 사료(史料)들은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것들을 볼 수밖에 없지만, 전북의 고유한 문화를 느끼기 위해서 특별히 유명 지정 음식점, 서예관, 국악원, 특정 전통관 등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어느 곳에서도 일상의 이러한 문화를 느낄 수 있어야한다.
전주에 선술집은 거의 사라져 없어지고 있다. 탁주 한병 주문하면 열 가지 이상의 안주가 나왔던 것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전주만의 유일한 선술집.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의 거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화와 고급화로 동네에는 주점이 아닌 노래방과 카페 만 있을 뿐이다. 구멍가게는 없어지고 작은 '수퍼'만 있을 뿐이다.
전북의 도시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국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 우리는 그 곳의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 곳의 구성원이 함께 누리는 삶의 양식과 표현체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대상은 그 곳의 건축물, 사람(모습, 눈, 의상, 행동 등), 음식, 그리고 풍물들이다. 그 곳의 문화가 고유할수록 그 곳으로의 여행은 더욱 뜻 있는 경험으로 남는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모든 도시문화의 지역성, 역사성, 그리고 전통성의 가치는 더욱 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문화의 나라라고 인정받는 프랑스에서는 최근, 고유한 지역성을 되찾는 문화운동이 한창이라고 한다.
예컨대, 지방학생들에게 표준어와 함께 그 지방의 방언(方言)을 가르치도록 허용하였으며, 중세시대의 동업조합의 전통을 잇는 협회모임을 지원하고, 지방의 고유한 건축양식을 부활시키며, 지방의 고유한 학문을 권장하는 학계의 방침 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보편적 현대문화 속에서 지역의 전통성을 모색함으로써 문화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여겨진다.
전북에는 음식, 서예, 소리 등의 고유한 문화적 소프트웨어(software)와 마찬가지로 많은 문화적 하드웨어(hardware)를 유산으로 갖고 있다. 전주8경, 10경 등 이야기거리 풍부한 곳, 동고산성, 남고산성, 반태산, 물왕말 등의 산성, 풍남문, 객사, 경기전, 이목대, 오목대 등의 사적지. 전주의 4대문 안의 구도심과 삼천천 쪽으로의 신도심을 이어주는 전주천은 머지않아 용담댐이 전주권 취수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되면 상관저수지의 물이 흘러나와 메마른 천이 아닌 제 모습의 전주천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주천 물길 따라 유서 깊은 한벽당, 천양정, 추천대. 이 곳의 큰 잠재력을 우리가 함께 일상적인 삶의 양식으로 누릴 수 있는 것으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별과 달이 비치는 전주천변에 선술집과 산책로와 마당의 등(燈)을 밝혀 우리의 고유한 일상적인 문화의 띠를 수놓아 보자.
/ 강대호 (건축가.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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