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나기가 매섭게 내린 뒤 맑고 깨끗해진 김제 금구면 싸리재 마을. 한여름임을 실감나게 하는 땡볕더위와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31일 한적한 농촌마을에 자리한 판화가 지용출씨(38)의 작업실을 찾았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연신 칼질(?)하던 지씨는 기자가 들어서자 마자 말문을 열었다.
“덥죠. 작업실이 창고같아서…. 여름에 작업해보려는 마음에 시작했지만 정말 덥네요. 힘들기도 하구요”.
코앞으로 다가온 개인전 준비에 바쁜 탓일까. 푸념(?)과는 달리 지씨의 얼굴에는 염천더위를 무색케하는 창작열정과 환한 웃음으로 가득찼다.
지씨의 작업 소재는 ‘고목나무와 들풀’. 이들 소재가 지니고 있는 느낌은 확연하게 다르다. ‘힘있고 무거움’과 ‘여리고 가벼움’. 그러나 작가에겐 이 모두가 흙에서 나는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같다. 지씨는 자연의 소산인 고목나무와 들풀에 담긴 역사성과 향토성을 목판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지씨의 목판에는 밋밋한 정원수가 아닌 지난해 봄부터 스케치했던 전주 평화동 느티나무와 중인리 율치 느티나무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씨의 들풀은 들에서 자라는 단순한 ‘야생’의 이미지가 아니다. 호박순이나 마늘뿌리 등 농산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이채. 지씨는 또 번거롭지만 물에 곱게 푼 황토를 한지죽에 섞어 직접 만든 흙빛 한지에 들풀을 옮긴다. 흙에서 사는 들풀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지씨는 판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붓놀림으로 그려진 화려함보다 칼맛이 주는 조형적 요소와 절제성에 있다고 소개했다.
“붓의 기교로 나타난 장식적 요소들이 칼에 의해 깎여 나갈 때 목판화의 맛을 느낍니다. 목판이 주는 흑백의 효과와 조형적 단호함이 내 작업스타일 같아요”
지씨가 그렇다고 판화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지씨는 나이 마흔이 되기전 전주의 역사성을 주제로 규모있는 전시회를 꾸려볼 계획이다. 이 전시회를 통해 작가의 창작의도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면 판화가 아닌 다른 장르에도 도전할 생각이라는 것. 지씨가 올해 초 싸리재에 30평 규모의 작업실을 마련한 것도 자신만의 작가세계를 탐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집사람에게 미안할 따름이예요. 교사라서 방학때 쉬어야 하는데 제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휴가도 못가고 아이들한테만 매달려 있어요. 결혼후 몇년간은 바가지(?)를 긁기도 했지만 요즘엔 제 그림을 이해해주는 첫번째 관객입니다”.
아내가 말한 감상소감에 ‘아! 그렇구나’고 느낄때도 있다는 지씨는 판화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고 있는 장르인데도 사회인식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한다.
판화가 극소수를 위한 안방미술이 아닌 서민들도 감상할 수 있는 장르로 제대로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지씨.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뒤로 한채 지씨가 한여름 굵은 땀방울로 온몸을 적시며 목판에 그리고 깎아낸 판화는 오는 22일부터 2주간 서신갤러리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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