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과 8월이면 소리꾼들은 어김없이 산으로 간다. 휴가철을 맞은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바리바리(?) 짊어지고 한여름의 낭만을 즐기러 간다지만 소리꾼들은 갈길이 다르다.
흔히 ‘산공부’로 불리는 독공(獨工)에 매진하는 시기가 이맘 때다. 독공이란 외부와 차단된 깊은 산속이나 오지로 들어가 오랜 기간을 발성에 매달리는 것. ‘산공부가 일년농사’라는 속설이 있을 만큼 득음에만 정진하는 산공부를 통해 공력을 키우고 소리를 넓힌다.
많은 국악인 가운데서도 단단하고 힘차고 높고 거친소리인 철성으로 이름난 이일주명창은 완주군 동상면 위봉폭포자락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일주판소리전수관이 그의 여름나기 장소. 이일주선생이 지난달말 이곳에 20여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자리를 잡았지만 앞으로 추석전까지는 위봉산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전수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켠에선 목청이 끊어지는 소리가, 다른켠에서는 숨이 끊어질듯 거친 호흡이 들린다. 이명창의 수제자들인 도립국악원 송재영교수와 김연교수. 소리에 관한한 웬만큼 기량을 축적했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곧바로 그것을 삭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맘 때가 어느 것과 바꿀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스승들이 이러한데 소리길에 접어든지 3∼4년에 불과한 제자들은 오죽하랴. 전수관의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서라도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소리를 한다. 해가 있을 때는 뿔뿔이 흩어져 공부에 매달리고 해가 지면 전수관에서 모여 소리를 한다. 세번의 식사시간과 땀에 절은 몸을 씻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연습에 매달린다.
몇십년 전만해도 산공부의 최종목표는 득음이었다. 독기를 품고 산을 찾아 득음을 하지 못하면 절대 산을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리공부를 보다 집중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산공부를 갖는다. 기간도 예전에는 1백일은 예사였지만 지금은 보름정도를 산공부로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일주명창은 “내 스승은 세속의 욕심을 일체 끊고 인적드문 심산유곡이나 토굴에 기거하며 득음에 정진했다”면서 “소리도 소리지만 산공부는 제자들에게 인성을 가르치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일주명창의 스승인 오정숙명창은 완주군 운주의 대둔산 자락에 위치한 동초각에서 산공부중이다. 오명창은 “예전에는 산공부에 들어가자마자 삭발부터 했다”며 “세상의 모든 잡념을 잊고 소리에 정진하라는 스승의 배려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고창 아산에 전수관을 마련한 조소녀명창도 산공부를 지속적으로 꾸려오고 있는 명창. 그는 판소리 여름공부를 취재하러 전수관을 들른 일본TV 관계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산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얼마전 전주에 터를 잡은 김일구명창은 산중이 아닌 자신의 판소리 전수관 옆 오목대와 한벽루가 더없이 좋은 여름공부 현장이다.
소리꾼들의 산공부가 깊어가는 동안 판소리고장의 명성도 한걸음 앞질러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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