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작품을 끝내고 서울로 보냈다고 했다. 거기에다 한여름 더위가 잠시 기를 꺾은 덕분인지 작가는 한결 여유있어 보였다. 한국미술계의 주목 받는 조각가 강용면씨(44).
군산시 회현면 월하마을의 농협창고를 빌어 쓰고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만만치 않게 넓은 공간이지만 오랜세월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빼곡히 채워져 가쁜 숨을 쉬고 있는 듯 보였다.
“여름 내내 이 어른을 만나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작업대에 놓여진 말끔한 인물상을 가리키며 그가 꺼낸 말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빼어난 서예가 김생(金生)이 거기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 인물상 작업은 충주시가 동상건립을 위해 공모한 프로젝트다.
“인물제작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1천여년을 뛰어넘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인물을 재현해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그에게 이 인물작업은 남다른 의미였다. 조각가로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그의 주제는 한국적 전통과 역사. 구체적인 인물로 만난 ‘역사원년’은 그의 의식을 더욱 새롭게 곧추세우게 하는 통로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조각가 강용면은 늘 지나간 역사를 오늘에 이르게하는 고민속에서 작업해온 작가다. ‘역사원년(歷史元年)’으로부터 근래 새롭게 얻은 ‘온고지신(溫故知新)’까지. 그의 화두는 과거를 뒤돌아보아 오늘을 읽어내는 힘에 놓여있다.
지난 91년 첫개인을 가진 이후 1년이나 혹은 2년 단위로 가져온 그의 전시회 작품 역시 일관되게 ‘전통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이어진 정신과 물질’이었다. 그는 줄곧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소재들을 현대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적 전통과 민족의 뿌리를 깨우치게 했다.
“디지털시대에서 우리의 토속적인 소재들에 집착하는 작업이 진부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새롭고 실험적인 대상입니다.” 그는 문화는 근본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사적 소재들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작업은 가장 아나로그적인 소재로 디지털시대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우리다운 형식이다.
지난 7월말에 열렸던 문예진흥원 기획 ‘디아나의 노래’초대전에서도 그의 아나로그적 언어는 눈길을 모으기에 족했다. 나무 누각위에 대형으로 제작된 놋그릇, 그리고 종이꽃과 나무 조각들을 수북히 쌓아놓은 ‘온고지신’연작은 그가 몰두하고 있는 최근 작업이다.
보다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언어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우연성이 집결된 형식들, 온갖 자유분방한 색채가 범람한 화단에서 그의 소재는 여전히 고답적이다. 궁금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 고답적이고 진부하기까지 한 소재들이 늘 새롭고, 신선하게 드러나는 까닭.
“늘 형식에 대해 고민하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환경을 읽어내지 못하면 미술의 대중화는 기대못합니다.”
우주삼라만상을 소재로 끌어들이는 목조 미니어처 작업부터 단순하고 질박한 표현으로 재현해내는 ‘역사원년’의 연작과 설치개념을 끌어들인 ‘온고지신’의 작업까지 한결같았던 그의 화두는 이제 보다 새로운 언어를 준비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조형물로 재현해내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휴식도 잠시. 그는 곧바로 시카고 아트페어에 출품할 작품 준비에 들어간다. 여름의 끝이 그에게는 더 뜨거워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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