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오는 21일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굳이 ‘국내 최고수준의 초대형 문화예술시설을 지향했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을 빌리지 않아도 규모나 시설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도세에 비해 지나치게 규모가 큰 것은 아닌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순수 민간위탁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도민들이 적지 않다. 지난 98년 착공해 완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 풀어야할 산적한 과제들을 되짚어보면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의 정체성과 미래를 가늠해본다.
‘전북문화의 메카가 될것인가, 처치곤란한 문화계의 계륵(鷄肋)으로 전락할 것인가’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개관식과 기념공연을 갖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시설규모로는 한국문화계의 메카로 자리잡은 예술의 전당과 견줄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많은 도민들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메카로서의 역할이 기대하면서도 자칫 ‘처치곤란한 문화공룡’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건지산을 에두르고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산1의1 일대 부지 3만1백87평에 자리잡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지난 98년 1월 착공, 총사업비 1천89억원(국비 1백억원 포함)을 들여 건축면적 4천43평, 연면적 1만1천45평, 지하 1층·지상 3층(3동)의 매머드급규모로 지어졌다. 착공한 지 44개월만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극장동에는 대극장인 2천1백63석의 모악당(5천1백29평)과 7백34석의 연지홀(2천5백13평)이, 소리고장의 자부심을 드높일 국악당인 명인홀은 2백22석 규모(1천1백45평)이고, 야외공연장은 7천석을 수용할 수 있다.
이밖에도 2천70평 규모의 국제회의장 및 전시장에는 6개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대회의장(2백50석)을 비롯해 중·소회의장 5곳, 전시장 7곳 등이 들어섰다.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 중앙광장(9백36평), 야외공연이 이뤄진 놀이마당(9만1천3백34평), 7백여대의 차량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옥외주차장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모악당은 오페라 뮤지컬 무용 등의 공연이 가능한 공연전문홀로, 3백여명이 동시에 출연할 수 있는 초대형 무대가 설치돼 있다. 연지홀은 음악회 연극 강연회 국악공연 등이 올려지는 다목적홀로 공연생산자와 소비자가 맞닿아있는 가장 대중적인 공간.
도립국악원 예술단이 상주하게 될 국악당에는 단체·개인연습실 18곳을 설치하고, 최신식 분장실을 갖추는 등 예술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북도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추진하면서 ‘그릇’에만 치중한 채 정작 ‘그릇에 담은 음식’에는 외면하는 우(愚)를 범했다는 인상이 짙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의 추진은 지난해말까지 도 건설교통국의 주관아래 이뤄진 탓에 문화예술관련 부서는 소리문화의 전당의 운영, 예술감독과 예술경영자의 문제, 시설사용의 문제 등에 관해 관여하지 못했다. 이는 전북도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단순하게 ‘건축물’로 바라봤음을, 지역문화계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던 현실을 재확인한 것. 이와함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앞으로 전북문화계의 메카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방향성은 고려되지 않은채 단지 소리축제행사장으로 지어졌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98년 12월에는 신축중이던 소극장 옹벽이 무너져 인부 2명이 숨지는 등 7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99년 11월에도 작업중이던 인부 한명이 10m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모감리업체가 서류를 허위로 제출, 업체를 재선정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북도는 민간위탁을 추진하면서 무수한 불협화음을 초래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규모 문화공간을 순수 민간위탁을 추진하면서 ‘경영논리’를 앞세워 치밀한 검증작업을 외면했기 때문.
특히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위탁자로 선정된 중앙공연문화재단은 신청과정부터 자격시비와 부적절한 경력승계를 빚었지만 전북도는 중앙공연문화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중앙공연문화재단은 지난 5월 1차 선정-도의회 자진철회권고-전북도의 민간위탁자 선정 재추진-지난 6월 중앙공연문화재단 재선정 등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7월부터 민간위탁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중앙공연문화재단은 연 30억6천9백만원의 위탁관리비로 내년말까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운영한다.
이제 전북도와 중앙공연문화재단은 그동안의 빚어낸 불협화음과 반목이라는 원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지역문화의 메카’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많은 도민들이 기대보다는 우려를 앞세워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 대관위주의 소극적인 운영이 아닌, 지역화를 담보하며 과감한 문화사업을 전개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이때문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