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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명] 추억의 메뚜기 이야기



가을이 깊어간다. 누런 벼이삭들이 출렁이는 들판앞에 서면 어릴적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징게맹개 너른들에서는 지난주 지평선 축제가 열렸다.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김제의 지평선은 가히 장관일만하다.

이번주 ‘자연과 생명’은 곤충학자 김태흥교수(전북대 농생물학과)의 특별 기고로 메뚜기 특집을 기획했다. 어린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김교수는 일상적으로 메뚜기라하면 벼메뚜기를 떠올리지만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친숙한 곤충들이 메뚜기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땅강아지나 귀뚜라미도 메뚜기 무리에 속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예쁜 나비봐라’, ‘에구 벌이네’, ‘바퀴다!’ 하면 각 각 1개의 종을 일컬음이 아니요 서로 닮은 일련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분류학적으로는 동물계의 절지동물문에 곤충강이 있고 그 아래 여러 곤충을 나비목, 벌목, 바퀴목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각 목에는 또 하위 분류군으로 나름대로의 과와 속이 있고 멧노랑나비, 머리뿔가위벌, 집바퀴 등이 하나의 실체인 종의 이름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인 초가을을 뜻하는 ‘메뚜기도 한 철’이라 할 때의 ‘메뚜기’를 이야기하자면 우선 짐작으로라도 메뚜기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두자. 여치류(여치아목)와 메뚜기류(메뚜기아목)가 메뚜기목에 포함되는데 한개의 목으로 묶여있음은 조상이 같고 지금도 서로 공통점을 많이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메뚜기는 우선 뛰는 것이 특징이다. 체형을 바꾸어 사람에 비교하면 높이뛰기로는 90m를 넘고, 넓이뛰기로는 150m를 가로지르는 정도이니 과연 세계 챔피온감이랄 수 있다. 메뚜기로서는 보다 높게, 보다 멀리, 보다 빠르게 뛸 수 있는 능력이 천적으로부터의 유일한 방어수단이며 그래야만 생존이 보장되고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어쨋든 대부분의 메뚜기들은 뒷다리의 퇴절이 특별히 잘 발달되어 있고 이 안에 도약에 필요한 근육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12과에서 124종이 보고되어 있는데 옛부터 식용(벼메뚜기)과 약용(땅강아지, 여치, 귀뚜라미)으로 이용해오고 있으며 벼나 콩과작물을 비롯한 농작물에 피해가 큰 경우도 있는 등 사람과의 인연이 깊다. 남과 북의 양 극지역을 제외하고는 세계 전역에 분포하며 24,000여종이 알려져 있고 특히 열대지방에 흔하다.

-베짱이도 ‘메뚜기’-

메뚜기도 어엿한 생물로 에너지원이 필수이기에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며 대개는 나무잎, 풀잎을 먹고 산다. 그러나 귀뚜라미와 같은 잡식성, 일부 베짱이 같은 포식성도 있다. 메뚜기 종류라면 모두가 번데기의 시기없이 어린 것으로 5-7회 허물을 벗으면서 성충으로 성숙한다. 대체로 배의 끝이 날 수 있을 만큼 잘 발달된 날개로 덮여 있으면 성충이고 노출이 되어 있으면 어린 것이다. 날개가 퇴화한 종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2쌍의 날개를 지니고 있는데 날지 않을 때는 가늘고 긴 앞날개 밑에 넓은 뒷날개를 부채같이 접고 있다. 앞날개는 비행과는 관계가 없고 두꺼운 종이같이 변해서 실제 비행에 쓰이는 막질의 뒷날개를 보호한다. 그러나 탁월한 도약능력에 비해 메뚜기의 비행능력은 훨씬 서툰 편이다.

-메뚜기 소리는 구애의 표현-

메뚜기는 소리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에게는 가을의 문턱을 들어서는 계절의 징표지만 이들에게는 암수 간의 짝을 찾는 구애의 노래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로 메뚜기는 어느 곤충류보다 청각이 발달되어 있다. 밖에서 얇은 막으로 보이는 고막기관은 한 쌍이 여치아목의 경우 앞다리의 경절에, 메뚜기아목의 경우 첫 번째 배마디 옆 쪽에 위치한다.

메뚜기의 발음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메뚜기아목의 경우로 가시가 나있는 뒷다리 퇴절을 앞날개 바깥쪽에 불거져 나온 날개맥에 부비는 마찰음이다. 다른 하나는 여치아목의 경우로 앞날개 한 장에 돋은 날개맥을 다른 장의 맥에 그어서 소리를 낸다. 꼭 현악기의 줄에 활을 긋는 형상이며 날개맥으로 둘러싸여 유리창모양이 된 부분이 울림판 노릇을 한다. 각 종마다 특유한 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수놈이 소리를 내고 동일한 종의 소리로 확인하면 암놈이 다가간다.

-초여름에 부화, 1년에 한세대-

메뚜기아목의 또 다른 특징은 더듬이의 길이가 짧아 몸체의 반에 훨씬 미치지 못하며 주간에 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가을에 땅에 덩어리로 알을 낳는데 이듬해 초여름에 부화하면서 1년에 한 세대를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뚜기하면 이 종류를 연상하는데 철없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벼메뚜기가 여기에 속한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잘 알려진 종으로는 풀밭이나 사막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풀무치가 있다. 뒷다리를 엄지와 검시로 잡고 있으면 아래 위로 오르내리던 커다란 방아개비도 한 종류다.

다리가 잡힌 줄은 모르면서 그저 멀리 뛴다는 것이 디딜방아를 찧는 꼴이 되는데 이들은 암놈이며 수놈은 훨씬 몸체가 작아 1/3 정도다. 이 밖에도 메뚜기아목에는 마름모꼴의 모메뚜기같이 1cm 남짓한 종, 이보다 작으며 벼룩같이 튀는 좁쌀메뚜기도 포함된다.

-곤충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소리-

여치아목은 나무나 풀 위에서 살고 주로 야간에 활동하며 실같이 가는 더듬이를 지니고 있는데 몸체보다 길다. 여치와 베짱이류를 포함하는데 포식자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서식처의 식생과 배경을 닮아 체색이 녹색에서 갈색, 흙색까지 다양하다.

녹색은 먹이식물에 함유되어 있는 엽록소로부터 얻는데 천적에 대한 방어수단이며 다르게는 잎이나 가지의 모양으로 의태를 하고 있는 종도 많다. 곤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내는 풀벌레 종류로 대부분 관목의 나무숲에서, 가끔은 물가의 풀섶에서도 만난다.

암놈의 배 끝에 나있는 칼모양의 산란관이 외형적인 특징으로 알을 숨기기 위해 식물의 조직에 틈을 내는데 사용하며 이 알이 월동한다.

귀뚜라미도 같은 여치아목에 속하는데 주로 땅위에서 생활하며 흙색이 많다. 몸체는 상대적으로 넓적하고 짧다. 배 끝에 하늘로 향한 미모 한 쌍이 있으며 발음기관인 앞날개가 길지 않은 관계로 소리가 높고 훨씬 음악적으로 들린다.

대기온도가 올라갈수록 몸의 신진대사가 촉진되면서 음절과 음절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기 때문에 미리 귀뚜라미의 종과 온도에 따른 간격기준을 정해놓으면 분당 음절의 회수를 근거로 야외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이밖에 같은 부류로서 땅강아지가 있는데 앞다리의 경절이 흙을 파헤치기에 알맞게 변형되어 있다.

저녁무렵 의외로 잘 날아 다니는데 잔 털이 온 몸을 고루 덮고있어 젖은 흙이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고 살아서 과거에는 농작물에도 피해를 입혔으나 토양이 오염되면서 지금은 수가 현격히 줄었다.

이 외에 메뚜기목에 속하지는 않으나 근연의 관계에 있는 곤충으로는 메뚜기의 원 조상으로 추측하는 바퀴, 이에서 갈라져 나와 포식성으로 변한 사마귀, 기온이 낮은 고산이나 동굴 속에 살고있는 귀뚜라미붙이, 어린 시기를 물 속에서 지날 수 있도록 적응한 강도래 등이 있다.

/ 김태홍 (전북대 생물자원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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