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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영원한 자유인.. 그를 전주서 만난다



윤이상(尹伊桑)은 머나먼 이국땅에 고국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졌다. 1995년 11월4일, 혼수상태를 오락가락하던 윤이상이 마지막 남긴 말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윤이상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음악가다.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히며 존경받아온 그는 동양의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색채의 선율로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의 궁정음악적인 요소와 동양의 무위사상을 서양작곡기법으로 접목해 ‘동양적 현대음악의 개척자’로 불린다.

 

그 자신의 말대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반복되지 않는 가을하늘의 구름’처럼 그의 작품에는 민족적인 향기와 사회참여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 낸 불행한 예술인.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윤이상의 생애와 음악세계를 기리고 조망한다.

 

창원시립교향악단이 18일 오후 7시30분 모악당에서 여는 윤이상스페셜. 영원한 자유인 윤이상의 음악이 메아리칠 때, 소리축제는 이제 정체성을 살찌우고 우리 것의 세계화를 다지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조직위가 당초 염두에 둔 윤이상 스페셜의 주빈은 북한의 윤이상관현악단. 그러나 이들을 초청해 소리축제의 내실을 새롭게 다지려 했던 조직위의 계획은 예산이나 정치적 동향이 여의치 않아 물거품이 돼야 했다.

 

윤이상관현악단의 공백을 메우는 창원시향은 지난해 윤이상의 관현악곡 ‘신라’를 아시아에서 초연하는 등 그의 난해한 곡들을 매끄럽게 소화한다는 평가와 함께 윤이상의 관현악곡 연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창원시향의 초청은 윤이상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 한국지부를 두고 있는 윤이상협회를 통해 이뤄졌다.

 

1917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17세때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파란만장한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오사카음악원에서 공부한 뒤 39세때 다시 프랑스유학길에 올랐고, 59년 독일 다름슈타트음악제에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2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71년 독일에 귀화해 한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영원한 방랑자신세가 된다.

 

한편으로는 평양에 윤이상음악연구소를 세우고 88년에는 남북음악축전을 제안하고 90년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하는 등 음악으로 남북화해의 다리를 놓기 위해 천착했다.

 

작품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칸타타 ‘나의땅 나의 민족이여’, 오페라 ‘심청’과 영어의 몸으로 작곡한 ‘나비의 꿈’등 1백50여편에 이른다.

 

                                                                             /정진우기자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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