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수를 넘긴 91년부터 93년 별세하기 직전까지 쓴 유작들로 아들 병근씨(도의원)가 소장하고 있는 30여점이 선보인다. 90세가 넘어서 쓴 작품들이지만 웅혼하고 탈속한 기상, 질박함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움에서 대가의 완숙한 필력을 느낄 수 있다.
석전은 송곳을 잡듯 붓대를 손바닥 전체로 쥐고 쓰는 악필법을 개발, 한국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연 서예가. 행서와 초서에 특히 능한 그의 글씨는 강건한 획과 맑고 탈속한 기품이 특징으로 꼽힌다.
고창 성내면이 고향인 석전은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약관을 갓 넘긴 22세(1920)때엔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 돈도암에 입산, 왕희지와 조맹부 등의 서첩을 섭렵하며 10년간 서도에 전념했다. 그뒤 집에 돌아와 해방될 때까지 자하 신위(紫霞 申緯.1769~1845)의 시서화를 공부하며 유가정신을 익히고 선비의 예를 두루 닦았다.
지필묵과 시·거문고만 벗하며 은거생활을 하던 석전은 63세 때 서예가에게는 치명적인 수전증이 생겨 붓을 놓아야 했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67세부터 악필법을 개발, 새로 일어섰다. 이후 오른손마저 마비가 왔지만 왼손으로 서예를 계속했다. 악필법은 작은 글씨나 세밀한 기교에 약한 대신 활달하고 웅장한 서풍을 보이게 된다.
석전의 서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73년 전주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은거생활을 거듭하다 76세때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열었던 서예전은 그에게 ‘속기(俗氣)를 벗은 고일(高逸)의 경지’라는 찬탄을 쏟아지게 했다.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택했을 뿐 서법을 결코 어기지 않았다’며 자신의 독특한 필체인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를 설명했던 석전은 91년 예술의 전당에서 회고전을 열어 다시 한번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구례 화엄사 일주문과 전주 오목대, 금산사 대적광전 현판 등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는 석전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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