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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마음을 앓는 사람들

지난 주말 지리산 피아골을 다녀왔다. 가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계곡에 겨울이 찾아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쌓인 낙엽위로 바람이 휘돌아 감길 때 무심하게 흩어지는 낙엽처럼 마음 한켠이 부서져서 스산했다.

계절이 오고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인데도 철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의 요동을 어쩌지 못한다.

가을은 더욱 그렇다. 햇살의 길이가 짧아져서 줄어든 일조량이 한 원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풍성한 수확을 앞에 두고 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은 탐스러운 결실로 풍요를 드러내는데 삶의 바구니는 초라하게 비어있기 때문인가?

마음이 아픈 것은 몸이 질병을 앓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신체적 질환을 오래 두거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생명이 위험하듯이 마음의 병도 그냥 지나치면 몹시 해롭다. 

급성으로 찿아 오는 질병은 미처 손쓸 겨를도 주지 않고 불행을 가져오듯이 마음의 병도 겨울 바람처럼 빠르고 혹독하게 불어온다. 그 바람이 마음을 훑고 지나가면 이내 맨살이 들어 나고 상처는 깊게 패여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21세기의 첫 해인 올해는 유난히도 마음의 질병으로 불행을 당한 이들이 내 주위에 많이 있었다. 

결혼 10년은 마치 솜사탕처럼 꿈같이 살았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의미 없고 자신은 작은 파편 같다던 30대 후반의 주부, 변화된 사회를 꿈꾸며 나름 데로 열심히 살아 왔다고 자부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돌부리에 채여 보니 자신의 존재가 너무 초라하게 여겨저 오래 우울하다던 미혼 여성, 유학을 떠나 푸른 꿈을 키웠던 여고생, 지치고 힘든 세상살이를 최선을 다 했던 생활인의 한사람, 그 외에도 몇 사람이 고질적인 마음의 병을 앓다가 서둘러서 죽음의 여행을 선택하고 먼 길을 떠났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전례 없는 풍요와 부요를 누리는 세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사회적 풍요에 짖눌려 산다. 하루하루를 살기가 너무나 버겁다. 

한여름 내내 들판에 나가 굽은 허리조차 크게 펴지 못하고 공들여 지은 농사는 풍년 때문에 남아도는 쌀을 소비 할 방도가 없으니 전량 수매도 어렵고 제값도 다 쳐주지 못하겠다며 내년부터는 아예 내린 값을 받을 요랑으로 농사를 지으란다. 

100원씩 가는 무값처럼 폭락한 농부의 병든 마음에 백 약이 무효다. 클링턴의 친구로 미국의 노동부 장관을 지내다가 아버지가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 겠으니 집에 돌아오면 자기를 깨우라는 막내아들의 엉뚱한 제의를 받고 장관직을 그만 둔 로버트 라이시는 오늘날의 사회적 풍요는 '강제노동'과 '파괴되는 삶'의 이면이라고 한다. 

즉 신 경제는 '부'를 주는 대신 '삶'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부요한 노예로 살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자리에 살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부'와 '삶'을 모두 빼앗긴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병은 사회적 병폐로부터 전염 된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일수록 더 우울하다는 일관된 임상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더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방자치 선거도 코앞에 닥쳐있다. 대통령의 임기도 끝자락을 밟고 있다. 이제는 정말 지루하고 환멸스러운 정치놀음은 그만 보고 싶다. 

그 대신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삶'을 돌려주는 정치와 정책을 경험하고 싶다. 위기로 불어닥치는 패배와 종속의 삶을 서둘러서 치유해야하기 때문이다.

 

 

 

 

/ 이혜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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