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한 아이는 비둘기가 피가 난다며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비둘기?" 비둘기가 피가 난다고 한다. 순간 난 겁이 났고, '비둘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또 그 비둘기가 날 쪼으면 어쩌나? 등등 여러 가지 상념이 스치고...
그런데 우리 꼬마는 비둘기가 피가 나니 빨리 가서 치료해달라며 내 손을 잡아끈다. 난 무서웠다. 동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은 터라. 자꾸 뒤로 주춤거리며 "어떻게 피가 난데?" 연거푸 질문만 했다.
그러나 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둘기를 보면 안다며 나의 주춤거림에 일격을 가한다. 그래서 난 마지못해 그 아이가 끄는 손을 따라 나섰고, 그리고 그 문제의 비둘기는 동물학습장 창살에 앉아서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둘기예요." 하고 가리킨다. 그런데 비둘기의 하얀 깃털 위 어디에도 혈흔은 없었다. "어디?" 이놈의 비둘기는 날아가지도 않는다. 꿈쩍도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날개 밑예요." "날개 밑. 어디? 피 안나는데?" 난 한발짝 떨어져서 눈으로만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휴!, 차암! 선생님 날개 속을 보세요." 이젠 날개를 들어보라고 재촉한다. "이런-!"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무섭다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날개를 살포시 들어보려고 손을 내미는데 이놈의 비둘기는 정말 날아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속살이 불그레하게 드러났다. 그러더니만 "자 보세요. 빨갛게 피나잖아요." "아! 이건 깃털이 덮여있지 않은 속살이라 그래. 그래서 빨간거야." "피가 나는 것이 아니예요?" "그래 이건 속살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묻고 또 묻는다.
결국 우린 서로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어버렸다. 우리 꼬마는 비둘기가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는 듯이 웃었고, 난 우리 꼬맹이의 순수함이 눈부셔서 웃었다. 초임때 내가 겪은 수의사가 될 뻔한 광경이다.
그랬다.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아프면 가장 먼저 나를 생각해내나 보다. 그래서 아이들 눈에는 내가 수의사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의사이기도 하나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이렇다.
전남 진도에 있을 때다. 어느날 한무리의 아이들이 갓 태어나 탯줄도 그대로 매달린 강아지를 두손으로 감싸안고 아침 일찍 격앙된 목소리를 울리며 보건실로 출근하였다.
"선생님, 선생님...강아지, 새끼가 아파요. 살려주세요. 새끼좀 살려주세요." "우리가 주워왔어요."
여리고 여리다.
탯줄 끝에는 약간의 모래가 흩어져 있고, 그래도 살아있는지 가슴은 팔딱팔딱 거리며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강 보건실 물품으로 가위를 불에 그을려 소독하고 탯줄을 소독한 뒤 소독실로 묶고 잘라주었다. 아이들은 두눈을 휘둥거리며 관찰하느니라 숨을 죽였고, 새 생명앞에 나와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숙연해 졌다.
어떤날은 개구리가 널부러져 죽어있는 것을 본 아이들에 의해 난 또 끌려갔다. 이번엔 아이들과 땅 파 엎으며 묻고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주었다. 하여간 "유세차-"하며 제문만 읊조리지 않았지 장사를 치뤘다.
하여튼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명의 가치는 뭐든지 양호교사인 날 생각나게 하고 결국엔 날 부른다. 그리고 난 때로 기지가 넘치는 치과의사로 서기도 한다. 친구 이 뽑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조금만 흔들려도 뽑아달라고 내달려오는 녀석들.
이 하나 뽑으면 학교 지붕위로 던지면서 "까치야 까치야 헌 이줄게 새 이다오!" 지붕위에 제대로 올려질때까지 수없이 애들이랑 노래를 불러제껴야 했다. 그래서 양호교사인 나는 던지기도 잘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 한번에 끝낼려면....
때로는 난 가족들의 건강까지 상담해 주는 가족간호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곧잘 온 식구들 건강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러 찾아온다. "우리할머니는 온몸이 쑤신다며 항상 아프세요. 어떻게 해야하나요? "
"엄마가 자궁암이라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나으실 수 있을까요?"라며 울먹이던 한 학생의 걱정을 들어주며 옆에서 자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에 대해 병을 통하여 인생상담까지도 담당하여야 한다.
엄마의 빈자리에서 감당해야 하는 생물학적인 성장과 성숙은 고학년 우리 여자 아이들에게는 때로 사춘기라는 심리적인 이유기 만큼이나 자신의 신체적인 변화를 더욱 더 부정적으로 인식케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가슴이 솟아 브래지어가 필요한 아이들에겐 그렇게 모녀지간아니 자매처럼 팔짱을 끼고 시장을 누비는 여유도 때로는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도 소리소문없이...
한편 운동력이 왕성한 남자아이들과도 맘을 터 놓을려면 우린 충분히 살가워져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같이 어울려 운동장에서 뛰며 자살골 넣었다고 된통 터지더라도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그래야만이 녀석들이 날 찾아온다. 힘든일이 있을 때, 위급한 상황에 닥칠때, 혹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날때도 전문가인 나에게 자발적으로 찾아올 수 밖에 없도록 만반의 분위기를 조장해 놓아야 한다.
더러 학년초엔 1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중에 본의아니게 옷에 실례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학생들은 보건실로 달려와서 도움을 요청한다.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달려가보면 아이는 창피하다며 문을 잠근 채 울먹이고 있다.
겨우 달래서 내 커다란 남방을 입혀보면 어느새 긴 원피스가 되고, 허리즈음에 빨간끈을 동여매 리본이라도 만들어 줄라치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금새 장난끼 어린 모습으로 웃음을 입가에 띄운다. 젓은 옷은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서 학급으로 보내고 담임에게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러면 학급에서는 돌연 친구의 예쁜 복장에 대하여 화려한 축하식이라도 이루어지겠지. 그리고 그 다음날 내 옷은 정갈하게 빨아져서 고맙다며 예쁜 우리 아이들의 볼 뽀뽀의 세례와 함께 돌아온다. 그리고 이미 우린 아주 작은 아름다운 비밀하나를 간직하는 중요한 사람으로 가슴속에 그렇게 남는다.
이처럼 난 할 일이 많다. 아이들 삶의 곳곳에서...하지만 해를 더하면 더할수록 나의 이런 노하우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맘 또한 여유롭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숨가쁘도록 허덕이는데도 불구하고 교직생활은 성취감과 기쁨으로 접목되지 못한채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그 불안감은 나도 모른 사이 아이들의 삶에 가차없이 투영되고 만다. 잠시 생각을 좀 정리해 보아야겠다. 대체 무엇으로 내가 이렇게 바쁜 삶으로 매몰되어 가는지?
급기야 "수업이 공문서를 작성하는데 오히려 방해된다"고 교사들은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교육청은 친절하게도 몇시-몇분까지 보내라는 조건식 공문에서부터 재 보고하라는 공문에 이르기까지 학교엔 공문이 넘쳐나고 있다.
한편 남보다 빠른 승진과 좋은 근평을 위하여 끊임없이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실적물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은행을 대신하여 저축을 담당해야 하고, 경찰대신 교통지도도 해야하며, 학교유해환경정화를 위하여 유해시설까지 감독하러 돌아다녀야한다.
행정실을 대신하여 대금도 수납해야 하고, 건강과 위생이라는 차원에서 온갖 건물의 청결을 관리해야 하고, 필터를 사서 교환하는 정수기 관리까지 담당교사를 세워내야 한다.
여교사들은 성차별속에 손님이 오면 차를 배달해 주어야 하고, 때론 학교장의 편의를 위하여 아침-점심으로 커피도 챙겨서 나르는 업무까지 접대라는 용어로 분장되어 있는 시대착오적인 학교 현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에서 요구되는 교사의 본업은 수업과 생활지도, 양호교사본업은 건강과 위생지도라는 정확한 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라는 해석으로 교사들에게 각종 잡다한 잡무를 지우며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권이니 하는 소신으로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미운털이 박힐 각오는 하고 덤벼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추운 겨울에 난방기는 고사하고 난로의 곁불조차 쬐어보지 못하고 얼어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교 현실은 교육보다 행정이 우위에 있는 사태에 교사들이 잡무로 허덕이고 있으며,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이 전도되고 있음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교육의 문제는 그 내적 문제로만 해결 또한 가능하지 않다.
더 크고도 깊은 문제의 근원은 건강하고 인간다운 인간교육에 대한 방향을 암시하고 사색과 행동을 촉구하는 교육정책 부재에서 비롯됨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소위 이땅 교육의 주체자로 강사가 아닌 선생님이 바로 서주길 바란다면 교사가 교육을 포함한 사회전반과 철학적 고민을 할 만큼 게으름의 미학을 꿈꿀 수 있는 여유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쟁속에 효율'이라는 경제적인 잣대로 교육과 교단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참,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 그러고 보니 내가 이번 성과급 순위에서 몇등급이었지? 컴퓨터 자격증도 따야하고, 연구실적물도 만들어야 하고, 대학원 진학도 하여야 하고, 근무성적도 잘 맞아야 하는데???
저번 연가투쟁에 참석하다 찍혔으니, 더 잘 보여야 할텐데. 이런! 딴나라당 사람들이 관리자의 정년을 또 연장하자고 했다면서.... 정말 엎친데 덮친격이군. 읔, 또 찍히겠다.
바쁘다 바빠!
"애들아 조용히 하자! "
"선생님 바쁘니까?"
/ 김미영 (순창 풍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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