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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새해 아침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우리 동네에는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 중간에 있고, 한 그루는 동네 뒷산에 있다. 그리고 또 한 그루는 동네 앞 강 언덕에 있고, 마지막 한 그루는 내가 키운 느티나무인데 내가 사는 방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우리 집 앞 강 언덕에 있다.

그 느티나무에 지금 하얀 서리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 아주 잘 생긴 어린 나무를 마당에 옮겨 심었다가 내손목만 할 때 저 자리에 옮겨 심었었다. 어린 느티나무를 내가 귀하게 챙겨주고 가꾸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도 어린 느티나무를 귀하게 여겨 잘 보살펴 주었다.

나무는 참으로 잘도 자라서, 언제 보면 그 나무에 새 잎들이 눈부시게 피어났으며, 언제 보면 샛노랗게 단풍 물이 곱게 들어 있었다. 언제 보면 그 나뭇가지에 눈이 내려 하얗게 쌓여 있고, 언제 보면 그 나무 위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잎이 피고, 비가 오고, 잎이 지고, 달이 뜨고, 소쩍새가 날아와 울고, 언제 보면 그 어린 나무가 눈보라를 견디며 서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어느 날인가 내 방문을 열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더니, 그 나무 아래에 지게꾼이 지게를 세워 놓고 쉬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무에 기대 앉은 농부와 지게와 그리고 앞 강물은 내게 평화였다.

나무가 점점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 그늘이 넓어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어느 여름날 동네 사람들은 강가에 있는 넓적넓적한 돌멩이들은 가져다 그 아래 놓고, 그 바위 위에서 낮잠도 자고 마늘도 까고, 토란대도 벗기며 도란도란 옛날을 추억하며 놀았다. 그늘이 더 넓어지자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감자도 삶아 먹고, 돼지도 잡아먹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놀았다. 

내가 고향을 떠나와 살다가 이따금 찾아 가 보면 나무는 더 많이 자라 있었다. 사람들에게 저 느티나무를 내가심은 것이라고 하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한다. 어떻게 몇 십 년 동안에 저렇게 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저 느티나무는 30여년을 저 자리에서 저렇게 자라고 있다.

그 나무가 오늘 아침에는 서리꽃을 하얗게 피우고 서 있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저 느티나무는 나의 희망이었다. 내가 세상을 살다 지칠 때 그 나무는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고, 나도 저 느티나무처럼 살며 크고 우람한 그늘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쉬게 하는 삶이고 싶었다. 

새 봄이 되면 늘 새로 잎을 피워내는 저 나무 같은 시를 세상에다가 스고 싶었다. 세상을 살다가 힘이 들면 나는 고향 마을 강 언덕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저 느티나무를 생각하며 힘을 얻곤 했다. 

올 겨울 강바람은 유난히 드세고 거칠었음으로 새로 오는 봄, 앞산을 넘어 온 봄 햇살을 받아 새로 피는 저 나뭇잎은 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리라. 저 나무에 새로 잎이 피면 새들이 날아와 울것이고, 달이 뜨고, 비가 오고, 세상을 가다가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쉴 것이다. 

한해를 보내고 새 해의 길목에 서면 지나간 해는 아쉽고 새로 오는 날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부풀기 마련이다. 늘 새로 맞는 새 해 새 다짐들이 헛되게 지나가 버렸을지라도 우리는 또 새 해 아래 한해의 부푼 꿈을 세상에 기댄다. 

희망도 내가 만들고 절망도 내가 만든다. 나의 희망과 우리의 희망 그리고 이 세상의 희망이 모두 한 길에 있다. 올해도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저 나무에서 이루어지는 하루하루 처럼 풍요롭고 무성하게 이루어지길 기대 해 본다.

 

 

 

 

/ 김용택 (시인. 임실 마암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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