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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 읽는 영화이야기] 리메이크



영화를 철저하게 산업적으로 접근하는 헐리우드로서는 과거에 인기를 누린 영화들을 되살리는 작업에 애착을 갖는다. 리메이크의 종착역이라는 헐리우드에도 몇가지 원칙과 흐름이 있다.

 

기존의 명작들에 엉뚱하게 새옷을 입혔다가는 자칫하면 ‘원작’의 이름에 먹칠하고 망신만 당할 수 있기 때문.

 

그런 만큼 리메이크영화들은 신인·무명감독이 아닌 작품성이나 연출력을 공인받은 중견감독들이 메가폰을 잡는 경우가 많다.

 

이미 검증을 거친 중견감독이라야 옛추억이 가득한 명작들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앞세운 것. 특히 브라이언 드팔마감독이 리메이크영화를 자주 연출했다.

 

또 헐리우드의 리메이크영화 가운데는 프랑스와 독일같은 유럽영화들도 상당수 포진된 다국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흥행과 작품성만 있다면 헐리우드시스템을 접목시켜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최근의 리메이크로는 헐리우드의 재기발랄한 감독 팀버튼이 연출한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2001)이 있다. 지난 68년 프랭크 샤프너의 ‘혹성탈출’을 리메이크했다.

 

인간과 원숭이들의 지위가 뒤바뀐 지구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를 그렸지만 원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원작이 핵전쟁과 냉전이라는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문명의 허구성을 앞세웠다면 팀버튼감독은 이와는 달리 여전히 미국내에 존재하는 흑백인종차별을 은유하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원작의 주연배우인 찰턴 헤스턴이 카메오로 신작에도 출연한다. 다만 그는 예전의 우주비행사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 테드장군의 아버지로 분한다.

 

또 알렝 드롱의 매력이 물씬 배인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감독 르네 클레망·1960)는 33년만에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감독 안소니 밍겔라·1999)로 환생한다. 안소니 밍겔라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국출신 작가주의감독.

 

조디 포스터와 헐리우드로 건너간 주윤발이 호흡을 맞춘 ‘애나 앤드 킹’(Anna and the King·감독  앤디 테넌트·1999)도 빼놓을 수 없다. 1956년 율부리너와 데보라 커가 주연한 뮤지컬 ‘왕과 나’를 모태로 삼고 있으며, 태국의 모체가 된 1860년대 샴국의 왕과 영국인 미망인가정교사의 사랑이야기다.

 

원작의 율 브리너가 거칠고 오만하며 야만적인 모습이었다면 주윤발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사려깊은 이미지로 묘사되는 등 몽쿳 왕의 캐릭터 비교도 재미있을 법하다. 이 영화는 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촬영은 말레이시아의 골프장에 왕궁세트를 지었다고 한다.

 

지난 54년 험프리 보가트와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사브리나’는 지난 9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등을 감독한 시드니 폴락이 리메이크했다. 멋쟁이로 변신한 운전수 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백만장자의 두 아들이 벌이는 갈등과 경쟁을 그리고 있다. 신작에는 줄리아 오몬드가 오드리 햅번역을 대신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랑스 코미디영화인 ‘네프 므와’와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는 헐리우드로 건너와 각각 ‘나인 먼쓰’(Nine Months·감독 크리스 콜럼버스·1995), ‘뉴욕 세 남자와 아기’(Three Men and a Baby·감독  레오나드 니모이·1987)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나홀로 집에’‘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크리스 콜럼버스가 제작과 감독을 맡은 ‘나인 먼쓰’는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유쾌한 코미디로, 휴 그랜트와 줄리안 무어가 여피족 부부로 등장한다.

 

1932년 하워드 혹스의 작품을 다시 만든 ‘스카페이스’(Scarface·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1983)는 금주령시대의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를 앞세운다.

 

리처드기어의 젊은 시절을 만날 수 있는 ‘브레드레스’(Breathless·감독  짐 맥브라이드·1983)는 프랑스 영화 ‘네멋대로 해라’에서 영감을 얻었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산불진화 비행사들의 애환을 그린 ‘영혼은 그대곁에’(Always·1989)는 1943년 제작된 ‘조라는 이름의 사내’를 부활시켰다.

 

부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자칼’(The Jackal·감독  마이클 케이튼 존스·1997)은 거장 프레드 진네만의 73년작 ‘자칼의 음모’를 리메이크했다. 마이클 케이튼 존스는 이보다 앞서 ‘디스 보이즈 라이프’‘롭 로이’등을 연출했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감독  존 맥티어넌·1999)는 68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리메이크했고, 당시 주연을 맡았던 페이 더너웨이가 신작에서도 다시 모습을 내민다.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써머스비’(Sommersby·감독 존 아미엘·1993)는 프랑스영화 ‘마틴기어의 귀향’을, ‘시티 오브 엔젤’(City of Angels·감독  브래드 실버링·1998)은 ‘베를린 천사의 시’를 헐리우드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

 

프랑스 폭력미학의 진수를 보여준 ‘니키타’(Nikita·감독  뤽 베송·1990)는 헐리웃으로 건너와 ‘니나’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됐지만 원작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때 뤽베송의 아내였던 안느 파릴로가 원작의 니키타로 분해 비행소녀에서 양손에 매그넘 권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전문 킬러로 변신한다.

 

이밖에 서부극 ‘셰인’은 ‘페일 라이더’(Pale Rider·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리메이크됐고, ‘다운 투 어쓰’(Down to Earth·감독  폴 와이츠·2001)는 로버트 몽고메리 주연의 1941년작 ‘천국의 사도 조단’을 리메이크했다.

 

그런가 하면 헐리우드영화들 가운데는 일본의 국민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들을 빌린 작품들이 많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감독 월터 힐·1996)은 1961년의 ‘요짐보’를, 율 브리너의 ‘황야의 7인’(The Maginficent Seven·감독 존 스터지스·1960)은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했다. 헐리우드에서 구로자와 아키라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읽을 수 있다.

 

스릴러의 대명사인 알프레드 히치콕감독 작품들도 리메이크의 첫번째 대상으로 꼽힌다. ‘다이얼 M을 돌려라’는 마이클 더글라스와 기네스 팰트로가 주연한 ‘퍼펙트 머더’(Perfect Murder·감독  앤드류 데이비스·1999)에서 부활했고, 다중인격영화의 효시인 ‘싸이코’(Psycho)는 지난 98년 구스 반 산트감독에 의해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굿 윌 헌팅’등으로 미국내 대표적인 인디영화감독으로 꼽히는 그는 히치코크 특유의 공포감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는 평가다.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경우도 적지않다. 사무엘 L.잭슨이 주연한 ‘샤프트’(Shaft·감독  존 싱글턴·2000)는 70년대 탐정영화 ‘새프트’시리즈를, 카메론 디아즈와 드류 베리모어 등이 출연한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감독 조셉 맥긴티 니콜·2000)는 70년대 인기TV시리즈 ‘미녀 삼총사’를 극장판으로 옮겨놨다.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The Fugitive·감독  앤드류 데이비스·1993)는 60년대의 동명 TV드라마를 현대식으로 재구성했다.

 

홍콩영화에서도 리메이크작이 상당수 찾을 수 있고, 그 가운데에는 서극감독이 있다. 한때 홍콩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다 지금은 헐리우드로 건너간 서극은 치밀한 연출력을 앞세워 과거의 무협영화들을 차례로 리메이크했다.

 

정통 무협영화 ‘칼’(刀·1995)은 ‘외팔이 검객’을 리메이크했고, 명나라를 배경으로 나라를 구하려는 비밀결사대이야기를 다룬 ‘신용문객잔’(新龍門客棧·감독 서극·1992) 도 무협물의 고전인 ‘용문객잔’을 각색했다. 설날연휴기간 온가족이 모여앉아 원작과 리메이크작을 비교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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