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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아침에 어머니께

 



정갈히 씻은 몸에 새 옷 갈아입고 귀향길에 나섭니다.

 

설이 무엇이길래 고향이 무엇이길래 설이면 더욱 설레는 마음일까요? 여섯 시간, 일곱 시간 아니 열 시간을 달려서라도 지친 몸 끌고라도 가고 싶은, 가서 안기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역귀성이니 뭐니 해도 돌아갈 고향이 있어서 설은 설답습니다.

 

집집마다 쌀엿을 고는 단내가 골목을 흐르고 흰떡 써는 소리 또각또각 들려오는 고향도 고향이려니와 아마도 그 고향이 그리도 살뜰히 그리운 것은 매미 허물처럼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늙으신 어머니, 당신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저 어릴 적 동네 방앗간에 함께 가서 밤늦도록 나래비를 섰다가 흰떡을 뽑아와서는 딱딱하게 굳기 전에 나란나란 썰던 기억이 어제만 같습니다. 이제는 당신 혼자 재래시장에 나가셔서 쌀을 튀겨 쌀강정을 만들어놓으시고 흰떡 뽑아다가 찾아올 자식들 떠올리며 궁시렁궁시렁 외로이 썰었겠지요. 설을 쇠고 다들 서울로 광양으로 전주로 뿔뿔이 되돌아갈 때 또 바리바리 싸주시겠지요. 더 못 싸줘서 안타깝겠지요.

 

모진 가뭄 끝에 거둔 쌀로 빚어서 그런지 오늘 아침 떡국은 그 어느 때보다 맛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차롓상에 올린 떡국 잘 드셨을 것입니다.

 

세배를 올립니다. 세상에서 배운 가장 겸손한 자세, 낮은 자세로 아이들과 나란히 엎드려 절 올립니다.

 

이 아침엔 아이들에게 고향의 설날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설날에 만나는 이 땅 모든 어머니의 그 살뜰한 정이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힘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 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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