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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진짜 문화도시에 살고 있을까

이런 저런 일로 여기저기 문화 행사에 참여해 문학강연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도시의 입구쯤 어딘가 에는 커다란 간판들이 눈에 뜨이는데, 하나 같이 우리 도시가 문화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다. 도시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문화의 도시임을 알려 우리들이 결코 돈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깊은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그러나 어떤 행사든 행사장엘 들어가서 한참만 앉아 있으면 나는 정말이지 그 행사장을 도망쳐 나와 그 도시 어딘가에 걸려 있는 문화도시라는 간판을 때려 부셔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솔 때는 굴뚝 연기 같아짐을 어쩔 수 없다. 

행사가 시작 될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하고 있으면 사회자가 나타나서 아직 시장님, 또는 군수님, 또는 도지사 님이 오시지 않아 행사가 잠시 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솔직히 그때부터 열을 받기 시작한다. 

내가 그렇게 열을 받고 있는 사이 ,문화행사장과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양복, 무쓰를 잔뜩 바른 짧은 머리의 사내 몇이 손에 휴대폰을 들도 서성인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 몇 명도 카메라를 들고 서성인다. 

몇 번 더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지나간 뒤 어느 순간 장내가 수런거리고 카메라맨과 짧은 머리들이 부산해지면 드디어 지방자치단체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치단체장은 행사장의 상석에 앉는다.그 행사의 대표들은, 하나 같이 입을 맞춘 듯 인사말을 통해 늘 이렇게 말한다. 

"바쁘신 데도 불 구하시고 자리를 빛내주신 시장님, 또는 군수님, 또는 도지사님.....운운." 

카메라들이 부산해진가 싶으면 그 바쁘신 분이 단상에 오른다. 그 분, 그러니까 문화의 도시라는 간판을 내건 장본인들의 축사 말씀은 어쩌면 또 그렇게나 하나 같이 의례적이고, 상투적이고, 하나 같이 구태의연하고, 똑같! 이 지루한가. 

그렇게 문화와 예술로 도배한 축사 말씀을 끝낸 그 바쁘신 분은 단상을 내려옴과 동시에 그 길로 행사장을 그냥 빠져 나가버리고 만다. 그 바쁘신 분이 행사장을 무례하게 빠져나가면 카메라, 검은 양복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다. 

나는 정말 진짜 열 받는다. 저렇게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몇 마디의 말을 하려고 도대체 그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왜 왔단 말 인인가. 그렇게 바람을 팽팽하게 불어넣으며 와서 바람을 쏙 빼며 갈려면 오지나 말지 왜 그렇게 왔다가 가버린단 말인가. 

그 바쁜 분을 왜 기다렸던가. 그 분은 이 행사 진행을 돕는데 얼마간의 돈을 보태 준 것이다. 나는 그 돈이 그 바쁜 분들의 사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왜들 이러는가. 정말 가난하다고 자존심까지 내 팽개치면서 이런 행사를 치러야 하는가. 나는 저 어깨가 축 늘어진 그 도시의 문화예술인들이 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 시청과 군청과 또는 도청을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또 열받는다. 

그러다가 보니, 그렇게 오랜 세월 문화를 행정가의 입장을 앞세우는 관과 행정가의 예산을 바라보는 예술인들이 함께 애호하고 사랑하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얼토당토않게도 그 지역의 문화를 낡은 간판이 대신해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가난해도 좋다. 그까짓 행사 안한다고 문화예술 다 죽는 것 아니다. 그렇게 손벌리지 말자. 그 손이 어떤 손인가. 제발 돈 보다 자존심을 앞에 챙기자. 바쁜 분들도, 돈 주고 행사 장엘 와서 표 구걸 말라. 돈에 의지하면 큰코다친다. 

보아라. 문화예술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하는 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는 우리들 코앞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그게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는가 문화예술인들도 한번 깊이 반성해 볼일이다. 정말 그럴라면 나 그 알량한 문화(?) 진짜 안 할란다. 

새 봄이 세상에 오고 있다. 집집이 꽃들이 담장 위로 만발하리라.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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