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군 동계면 적성강 주변 산골 마을 귀미리.
최근 세계적 시민환경단체 내셔널 트러스트가 주최한 ‘2002년 내셔널 트러스트 후보지 콘테스트’에 도내 대학생들이 환경보고서를 제출, 동상을 차지한 곳이다.
원광대 한국문화학과 오정아씨(3년)등 학생 4명이 이 곳을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한 후 ‘6백년의 전통마을 귀미리와 적성강’이라는 주제로 자연문화유산 분야에 출품, 보전가치를 인정받은 것.
내셔널 트러스트(www.ntrust.or.kr)는 후손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및 문화유산을 확보, 시민 주도로 영구 보전하자는 환경운동 단체다.
이곳 주민들은 적성댐이 건설될 경우 수몰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속에 댐 건설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황.
봄기운이 꿈틀대는 섬진강 상류, 원광대 학생들이 다녀간 전통마을 귀미리를 찾았다.
전주에서 옥정호를 넘어 순창으로 향하는 국도 27번을 타고 가다 강진사거리에서 지방도로 접어들면 초저녁 어스름과 함께 지나는 차량조차 만나기 힘든 적막한 산골풍경이 이어진다.
순창 동계면 소재지에 약간 못미쳐 우회전, 좁다란 시골길로 2.7km정도 들어가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산골마을 귀미리. 전주에서부터는 53km를 달려야 한다.
‘육백년 이은 터전 새 마을로 단장하세’라는 마을입구 표석의 글귀와 최근에 새로 건립, 아직 막조차 걷어내지 않은 정자가 방문객의 시선을 제일 먼저 잡는다.
‘한양보다 앞선 터 / 옛님의 향기 고즈넉하니 / 자랑스럽고 그리운 고향 / 다시 / 새천년의 기약 귀화정 놓을시고’
‘귀화정(龜華亭)’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정자의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는 군의회에서 걸어놓은 현수막과 함께 댐건설을 반대, 마을의 영구보존을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을 전하고 있다.
귀미리는 고려말 개성에서 정변으로 남편을 잃고 남원 양씨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낙향한 숙인(淑人) 이씨가 터를 잡은 후 6백년을 이어온 전통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전북도 문화재자료 제 1백72호 ‘열부 숙인이씨 정려’가 이 터의 유래를 소개해준다. 또 마을뒤로 힘있게 우뚝 솟아 있는 무량산(無量山)도 인상적.
고려시대 마을조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문화전통과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인근 적성강의 환경을 연계, 자연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가치가 높다는 게 내셔널 트러스트에 보고서를 낸 원광대 한국문화학과팀의 견해다. 조선후기 마을분화 과정에서 태동한 자연촌이 아니고 고려말 교과서적인 마을풍수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므로 마을자체에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
마을입구에 돌거북이 있고 이 거북의 꼬리가 마을로 향해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귀미리(龜尾里)다.
전북전통문화연구소 송화섭소장은 “귀미리는 마을자체가 문화재라 할 만큼 보전가치가 높은 곳이다”며 “주변 자연환경과 하나의 자연문화환경권으로 묶어 생활민속촌으로 가꿔나간다면 문화재도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농촌 근대화와 생활환경 개선으로 옛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고려시대 촌락구성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 마을과 주변환경을 생활민속촌으로 설정,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통마을로서 전체적으로 훼손상태가 심하지 않은 점도 이곳의 보존 필요성을 높여주는 부분이다.
여느 농촌처럼 빈집들이 늘어나고 편리한 거주공간을 위해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가옥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전통마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귀미리의 현재 모습이다.
- 내셔널 트러스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뛰어난 자연자원및 문화자산을 확보, 시민주도로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자연신탁국민운동’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환경을 미래세대에 물려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895년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과 일본·뉴질랜드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30여개국에 단체가 조직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1월말 사단법인으로 창립, 공식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순창 귀미리를 동상으로 뽑은 후보지 콘테스트는 이번이 두번째 행사다.
영국에서는 약 2백50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전체 영토의 약 1.5%를 인수 또는 신탁받아 영구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우선 전국 각지에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조사, 대상지를 선정한 후 다양한 보전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자연자원의 관리상황을 평가·감시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우수 자연생태지역과 우수 경관지역·역사 문화유적지등을 보전대상지로 설정하고 있다.
또 대상지 선정과정에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지 않고 있는 지역 △훼손될 위기에 처한 지역 △ 희귀 생태계 유지 지역 △구입이 용이한 곳 △자연·역사 체험지로서 가능성이 높은 지역등을 그 기준으로 정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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