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호씨(64)는 다작(多作)하는 시인이다. 최근에 펴낸 ‘하현달 지듯 살며시 간 사람’(오감도)은 그의 여덟번째 시집이다. 60대 중반에 들어선 시인의 창작열은 놀랍다.
더구나 이 여덟권의 시집속에 오롯이 놓여있는 문학적 정서와 의식의 일관된 세계를 추적하다보면 끊임없이 분출하는 시적 세계에의 갈증이 그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다작의 이면에 숨어있을 수 있는 표현의 한계도 이러한 그의 미덕으로 충분히 보완된다.
이 시집에 실린 64편 시는 대부분의 시들이 그랬듯이 자전적인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비 오는 날에는 저승에 간 친구라도 불러다가/술을 마시고/눈이 내리면 연인도 없이 허랑한 마음으로/동네 강아지라도 졸졸 따라가 보고/바람이 상하게 부는 날은 어물전으로 달려가/마른 가오리를 짝짝 찢어서 깨물다가/술이 취하면 늙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서시(쉽게 쓰는시) 중에서’
일상의 삶은 시인에게 가장 충실한 표현의 주체다. 그의 시들이 자연과 생명, 인간 존재의식과 같은 다소 비현실적인 세계에 잇대어 있으면서도 자기인식과 현실에 대한 치열함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연작시로 선보인 ‘새’나 ‘도깨비’ ‘새야 새야 개땅새야’등은 그의 이런 시적 특징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그릇이다. 자의식의 면면을 환히 들여다 보이는 ‘새’는 더욱 치열해진 시인과 세상과의 싸움을 녹록하게 풀어낸 시적 세계로 다가온다.
‘요즘 산새는 산에서 울지 않고/시장 모퉁이에서 내려와 운다/시골 할머니가 다듬다 버린/푸성귀도 갈무리하고/7부바지 젊은 아줌마 단침 묻은/박하껌도 물어다 씹는다-중략- 낡은 시간은 졸고/별이 여무는 거기/이승에 가지고 온 손바닥만큼/기다림이/산골 장터 한나절은 따 담고 서있다. -새·9(낡은 시간)’
시인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물론 그것은 처절한 자기 고통과 갈등을 겪고나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그런 세계다.
‘하루에 삼천 배를 올리고, 그렇게 고개를 갸웃 갸웃 조아리고 이승을 쪼아대야’저승빚을 갚을 수 있음을 아는 ‘새’는 ‘저승의 일체를 어느 발우에 어느 꼴로 비워서 몇 만 배를 올려야 새털처럼 가벼워져 물안개 일 듯 자욱하게 날아가 마음의 절 한 채 지긋이 세울 수 있을까’고 묻는다. 시인이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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