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일간지 가디언 (The Guardian)의 3월 2일자에는 프랑스의 문호 빅터 휴고 (Victor Hugo: 1802-1885)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금년은 휴고 탄생 200 주년인데 그레이엄 롭 (Graham Robb)이 쓴 휴고의 전기를 소개하는 기사로서 그 내용에는 몇 가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점이 있다.
우선 휴고의 파란만장한 생애 중 역경에서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불휴의 명작 몇 편을 썼다는 점, 그리고 무려 백오십년 전에 「유럽 연합국」이라는 꿈을 꾸었고, 나아가서 유럽의 「단일 통화」를 제의했다는 사실은 정확한 예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은 이미 단일국가체제로 들어가고 있으며 단일통화는 현재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휴고는 우선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르 미제라블 (Les mis rables : 1862)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문단에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쌓은 한편, 정치적으로는 열렬한 공화주의자로 활약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3세의 분노를 사게 되어 20년 (1850-1871)이상의 기나긴 세월을 망명지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가 망명한 곳은 프랑스 북쪽 연안에 있는 영국령 채널섬이었다.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어서 망명생활 중에도 양국의 정치정세를 소상히 알 수 있어서 휴고에게는 매우 편리한 곳이었다.
휴고의 걸작들은 모두 이 망명생활 중에 쓴 것들이었다. 즉, 그는 자기의 역경을 잘 활용하여 좋은 기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불요불굴의 의지는 오히려 그러한 역경에서 더욱 큰 업적을 낳게 한 것이었다.
역경을 기회로 활용한 저명한 인사들은 휴고 외에도 있다. 예를 들면 피카소는 프랑코장군이 국왕을 퇴임시키고 독재정권을잡자 오랫동안 프랑스에 망명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고, 헝가리의 민젠티(Mindszenty) 추기경은 사회주의 정권에 저항하여 부다페스트의 미국대사관에 망명하여 무로 15년 이상의 끈질긴 저항생활을 하여 유명해졌다.
휴고에 관해서는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은 그가 르 미제라블의 원고를 완성하여 출판사에 보내면서 출판이 될 지 않될 지 자못 초조하여 편지 대신 ?표를 그려서 보냈는 데 출판사로부터의 답장 역시 간단히 !표만을 그려서 보내왔다고 한다.
천하의 명작들도 작가가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펄 벅의 「대지(大地; The Good Earth:1931)」나 마가레트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6)」등은 첫 쪽 혹은 첫 장을 30번-40번 고쳐 썼다고 전한다.
한편 어느 작가는 원고를 몇몇 출판사에 보냈으나 보낸 곳마다 모두 퇴짜를 맞고 울화가 터져서 편집부에서 긑까지 읽어나 보고 퇴짜를 놓는지 궁금하여 원고 중간의 몇 쪽을 풀로 부쳐서 보내보았다. 반환된 원고의 풀로 부친 곳이 그대로 있어서 전화로 강력히 항의하자 편집자 왈 「곯은 달걀은 속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요」라고 능청맞은 대꾸를 했다고 한다.
작가 뿐 아니라 편집자들도 때로는 퉁명스러운 문의를 받는다고 한다. 영국의 어느 잡지 편집인은 어느날 「구독료를 현물로도 받느냐」고 전화로 문의하면서 자기는 돈은 없지만 자기의 작품으로 지불할 수 있다기에 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는 관을 만드는 목수」라고.
/ 박춘호 (부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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