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며 뭉친 청년들, 영화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기투합, 값비싼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영화를 찍는 겁없는 사내들이 있다.
송원근(26·전북대 경영학부 3년), 시철우(26·전북대 영문과 3년), 이재영(25·원광대 사회복지학과 2년)씨.
영화 제작에 뛰어든 지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 영화감독들이다. 경력이 짧다고 실력까지 모자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송씨는 지난해 추석동안 찍은 작품 ‘어머니의 외출’을 SBS VJ영상축제에 출품,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송씨가 가장 아끼는 재산목록 1호인 디지털 카메라도 이때 부상으로 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외출’은 이달말 열리는 전주시민영화제의 온고을샷 작품으로 선정되어 덕진예술회관에서 선을 보인다. 송씨는 또 첫 작품인 ‘송화도예’로 YTN에서 주최한 대학생 영상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만만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워크숍에 참여, 영화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쌓고 있는 이씨는 안정적인 구도와 감각적인 샷이 장점이고 대학 새내기때부터 연극반에서 활동해온 시씨는 연출력은 물론 연기실력까지 두루 갖춘 실력파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찍기’ 도전에는 화려함보다는 쓰라린 경험이 크다. 3인방이 처음으로 공동 제작한 단편영화 ‘더 메모리즈(The Memories)’가 올해 시민영화제 상영작 선정과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자기 상처만 기억하고 남에게 피해준 것은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그린 16분짜리 단편.
“색보정과 조명이 잘못되고 화면에 렌즈가 비쳤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시민영화제라면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 주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시철우)
“영화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우리들의 용기를 무너뜨린 것 같아 섭섭하죠”(송원근)
각각 쌓인 불만은 많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단계 성숙된 영화세계를 펼쳐보이겠다는 각오도 만만찮다.
“그래도 내용 없이 예쁜 화면, 감각적인 화면보다는 우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낼 겁니다. 기술이나 노하우는 자연히 쌓이는 것 아닙니까”(이재영)
‘영화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장르’라는 영화론을 펼치는 이들이 처음 만난 것는 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다. 상영관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이들은 씨네21에서 동거동락(?)하며 친해졌고 이후 술자리에서 영화를 만들자고 도원결의(?)했다.
영화제작을 위한 기본장비가 없어 애를 태우던 시씨와 이씨는 지난해 기백만원을 호가하는 디지털카메라를 외상으로 구입했다. 외상값을 갚기위해 결혼식 촬영은 물론 도서관 사서 등 아르바이트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영화 하나로 뭉쳤지만 좋아하는 감독과 하고 싶은 일은 모두 다르다.
“중학교 때부터 PD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대학방송국에 가입, 영상찍기에 몰두했어요”라고 말하는 송씨는 영화보다는 화면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
반면 시씨는 고교시절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보고 영화에 푹 빠져든 경우. “장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영화에 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영화가 좋아진거죠.”
나이가 한살 어린 이씨는 군제대후 영화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두 형(?)을 만나 영화제작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영화제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자신이 초라해진 거죠. 하지만 포기보다는 더 배워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도전의식이 더 많아요”라고 말하는 이씨는 류승완 감독처럼 되는 것이 꿈이다.
영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에겐 암묵적인 합의가 하나 있다. 영화에 대해 어떠한 난상토론이 오가더라도 한명이 새로운 영화를 기획하면 무조건 따르는 것.
‘더 메모리즈’를 끝낸 이들은 4월말부터 쓰레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찍는다. 쓰레기를 통해 자아정체성을 고민하자는 시씨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다.
‘따로 또 같이’ 영화를 위해 뭉치는 이들 3인방의 도전은 올해 인디포럼과 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환하게 빛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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