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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주시립극단 '이(爾)'



태평소의 애절한 힘이 담긴 소리.  그렇게 시작된 공연은 동성애를 소재로 연산과 장녹수, 광대들이 등장하는 특이하고 매력적인 줄거리로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극의 화두는 동성애가 아니었다.

 

전주시립극단의 정기공연 ‘이’(爾, 연출 안세형, 극 김태웅)가 21일 저녁 7시 전주덕진예술회관에서 막을 열었다.

 

고조영(연산 분)의 정확한 호흡과 발성, 뚝심있는 안대원(장생 분)의 연기, 홍지예(녹수 분)의 카랑한 음색(?)은 작품 초반부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극이 전개될수록 ‘여자도, 본시 남자도 아닌’ 공길(소종호 역)의 매력은 두드러졌다. 무대를 휘감는 김경미, 백민기, 최경식 등 우인들의 흡인력은 특히 돋보였다. 공연 중, 궁녀의 파리 잡기(?)를 보는 것은 뜬금없는 즐거움이다.

 

작품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국악장단,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진상놀이(벽사의식)는 관객을 오로지 '놀이'에만 푹 잠기게 하는 요소들이다.

 

우인들이 풀어져서 뛰노는 모습으로 시작된 첫 번째 진상놀이. 사자탈을 쓴 광대는 위엄한 풍채를 자랑하며 등장하고, 죽마를 탄 광대는 서둘러 달려나오며 관객을 긴장시킨다.

 

무대 중앙으로 가볍게 몸을 털며 상모잽이가 너울너울 재주를 넘고 어깨를 살풋하며 장구를 둘러맨 광대는 살랑살랑 춤을 추며 등장한다. 한바탕 놀아 제끼는 이들의 행위는 이제 귀신이 아니라 ‘백성들 간을 내어 회쳐 먹는 잡놈’들을 향한다.

 

극의 절정은 장생과 공길의 소학지희(笑謔之喜). 연신 땅재주를 넘으며 고개 넘는 흉내를 내는 장생의 행위는 관객들에게 더이상 즐거움이 아니다.

 

운영책임자의 부재라는 어려움 속에서 치러진 공연. '장바닥에 나가 빌어먹어도 할 말은 하고 살자’는 전주시립극단의 신념이 더욱 강하게 와닿았다. 22일 오후 7시와 23일 오후 4시에도 공연된다.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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