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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봄이 오는 강건너 마을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앞 강 건너에는 전형적인 마을이 산자락에 포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이 학교에서 22년째 근무를 하고 있고, 이 초등학교를 6년 동안 다녔으므로 강건너에 있는 물우리라는 마을을 28년 동안을 바라보고 있는 샘이다. 어디 26년뿐이겠는가. 다른 학교로 근무처를 옮겨도 이 물우리 마을을 늘 바라보고 다녔으니, 이 마을을 나는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다. 

이 마을은 섬진강 가에 있는 마을 중에서 가장 마을다운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마을의 큰 나무나 큰 바위들이 다 전설과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듯이 이 소나무들도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전설도 전설이지만 이 소나무 숲은 마을의 북쪽에 있음으로 겨울 추운 북풍한설을 막기 위해 가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 소나무에 사병들의 계급장 표시 모양의 큰 상처들이 있는데, 일제 시대의 송진을 받아 간 흉터이다. 

마을 오른 쪽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다. 옛날에는 이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당산나무 또는 정자나무라고 통칭한다. 이 나무숲의 나무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나무가 느티나무이고, 팽나무, 서나무가 많다. 이 마을에는 멧방석만한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데, 그 나무는 참나무였다. 

참나무로도 사람들은 정자나무를 삼았던 것이다. 가난하고 남루한 초가 마을 앞에 서서 커다랗고 우람한 이런 나무들이 단풍물이 들었다가 잎이 질 때까지 잎을 피우고 서 있는 모습은 마을을 풍요롭고도 포근하게 해 준다. 

조촐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마 그렇게 풍성했을 것이다. 몇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에는 옛날 당산제를 지낼 때 돼지머리를 묻었던 큰 무덤 모양의 가묘도 있고, 큰 느티나무 밑에는 제사를 지낼 대 쓰던 바위 상이 있다.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불이 자주 났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유독 불이 많이 난 마을이 이 마을이었다. 유독 불이 잘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아무튼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에다가 작은 저수지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동네 앞에가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이와 해가 있겠지만, 불의 두려움에 대한 궁여지책이 잘 드러난 표시이다. 

이 마을 앞 강 건너에는 회문산이 있다. 마을 코앞에 커다란 산이 떡 버티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앞이 너무 툭 터져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마을 앞이 툭 터진 그 어느 곳에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어 사람들의 휑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이 마을 앞은 너무 큰 산 때문에 또 위압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 앞에 커가란 나무들을 심어 산을 가렸다. 이 마을 앞 나무숲은 특이하다. 큰 나무들을 심어 놓은 곳, 그러니까 몇 그루의 느티나무, 참나무가 있는 곳에 작은 동산이 있는 것이다. 이 동산은 마을의 안산 역할을 해 주고 있는데, 절묘하게도 마을을 안심 시켜주는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을은 이렇게 마을 형식을 고루 갖춘 마을이다. 임실 회문리에서 순창 구미리까지는 농민들이 마을 공동체를 가꾼 이런 흔적들이 널려 있다. 시급히 보존해야 할 소중한 유산들이다. 

정월이면 동네 사람들이 풍물굿을 하는데, 우리들은 운동장 가에 나란히 서서 마을 고샅길을 돌아다니는 풍물패들의 울긋불긋 굿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흥에 겨운 동네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강을 건너오면 우리들도 고함을 치곤 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동네 처녀들의 모습이 보였고, 학교 뒷밭에 있는 감을 따먹으면 우리 고모님이 욕을 하던 고함 소리가 학교까지 들려 왔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 아름다운 강 마을에 지금 봄이 오고 있다. 텅텅 빈 강 마을의 봄이 하루가 다르게 꽃으로 번진다. 봄이 저렇게 오던 날 마을 앞에 있는 논두렁으로 처녀들이 나물을 뜯으러 와서 불던 버들피리 소리가 그립다.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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