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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인물들] 죽어도 괜찮은 사람 '예수'



때로 삶이 고달프고 힘겨울 때,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다. “죽고 싶다. 죽었으면 좋겠다.”

 

힘겹고 고달픈 인생살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인가?

 

사람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할 일이 천차만별이겠지만 공자님의 표현으로는 도(道: 진리)를 듣는 것, 즉 도(道)를 자신의 삶 안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자님께서는 “아침에 도를 들어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어도 괜찮다(早聞道 夕死可矣)”고 하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한 사람이라야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몇 주전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인 예수 부활 대축일을 보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온 인류를 해방시키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먼저 십자가의 희생과 고통,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것이 우선 삶보다 강하기만 하다면. 삶보다 강한 사랑, 그것이 희생이오,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것이 부활이다(프랑수아 바리용).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은 바로 삶보다 강한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예수님의 온 삶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의 삶이었다. 

 

33년이라는 길지 않은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한 단 하나의 일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만찬 식탁에서 종처럼 제자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그들의 발을 씻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유언하셨던 것이다.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맡겨주신 단 하나의 일이었다.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예수님께서 꼭 해야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죽을 수 없었던 그런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단 하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 받아들이셨던 것이다.

 

익으면 꼭지가 떨어진다고 한다.

 

속이 곯아 꼭지가 떨어지면 아무 것도 이 세상에 보시(布施)할 수 없지만 온전하게 익어 땅에 떨어진 그 열매는, 씨앗은 이 세상 수많은 생명 있는 것들을 위한 훌륭한 양식으로 다시 살아난다. 부활하는 것이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다.

 

예수님은 잘 익어 꼭지 떨어진, 그래서 온 인류에게 훌륭한 양식이 된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셨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죽어도 좋을 사람, 죽어도 괜찮은 사람들인가? 오늘날 죽어도 괜찮을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 죽어도 좋을, 죽어도 괜찮을 그런 사람이 그립다.

 

/ 남종기 (영등동 성당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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