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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군산 앞바다 고려청자 인양



군산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청자는 우선 규모면에서 관심을 모은다. 문화재청(청장 노태섭)은 지난 17일부터 유물을 수습한 결과 모두 4백54점을 인양했다고 24일 공개했다. 이처럼 대단위 해저 유물이 인양되기는 70년대 신안과 80년대 완도에 이어 세번째라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바다에서 유물이 대규모로 수습되기는 도내에서도 처음이다.

 

수습된 유물은 최초 발견자인 조모씨가 신고한 2백43점을 비롯해 문화재청이 벌인 긴급탐사에서 인양된 2백11점 등 모두 4백54점. 이중 조씨가 수습한 유물은 현재 국립전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유물 대부분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고려청자인데다 대부분 손상되지 않은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학술적 연구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일회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고려초(11∼12세기) 고려청자와 세미(稅米)를 싣고 개성을 향하던 세선이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오랜기간 해저의 퇴적층에 덮여 있어서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어 당시 청자 제조방법과 문양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발 대접 접시 등 일상 용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유물중 앵무새로 보이는 새가 음각된 대접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인양된 유물이 인근의 부안 유천리도요지 제7구역 27호와 28호에서 확인된 것들과 아주 유사하다면서 유천리 도요지에서 제작된 고려청자들이 줄포항을 거쳐 개경 등지의 관청으로 납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제작시기는 11∼12세기로 추정된다.

 

 

 

최초 유물 발견 조동선씨..

 

군산시 비안도 일대 바다속에서 수백여점에 달하는 고려청자가 발굴돼 문화재청은 물론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최초 유물을 발견했던 조동선씨(38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 사진)와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 등을 알아봤다.

 


△해저에서 수백여년동안 잠자고 있던 유물을 발견했을 때의 소감은?

 

-유물인지도 모르고 호기심에 원광대 박물관에 의뢰를 했더니 고려시대 청자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어로 활동중 유물을 건져올리게 된 당시의 상황은?

 

-때가 이른 관계로 소라잡이가 신통치 않아 장소를 두어번 옮기던 중에 손에 뭔가 잡혀 건져올렸더니 뻘에 묻힌 자기의 일종들이 나왔다.

 

잠수를 해서 바다속을 살펴보니 그릇이며 접시 등 마치 일부러 누가 바다속에 뿌려놓은 것처럼 많은 유물들이 바다 밑 뻘 속에 묻혀 있었다.

 

△평소 문화재에 관심이 있었는가?

 

-20여년을 소라잡이로 살아온 어부일뿐 문화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건져올린 유물이 고려청자라고 했을때 그 느낌은 어떠했는가?

 

-이지역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일로 인해 이 일대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이게 되면 우리의 생계터전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만 있다. 한편으론 유물을 발견하게돼 기쁘지만 지역민들에게 그 원성이 돌아오지 않을까 무척 걱정스럽다.

 

△정부나 관계당국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화재 신고를 하게되면 보상이 따른다는데 극히 미약하다고 들었다. 제2·제3의 신고를 위해서라도 충분한 보상이 뒤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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