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보안면 유천리도요지와 진서면 진서도요지는 전남 강진 사당리 가마터와 함께 고려 상감청자의 대표적 생산지였다.
유천리 일대 들판에만 40여개소에 달하는 가마터가 산재해 있고 아직도 청자 파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 고려청자의 최전성기인 12세기 중엽에는 변산반도에 2백여개, 유천리 일대에만 80여개의 가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그 규모는 대단했다.
유천리 도요지는 당대 가장 우수한 청자를 생산해 낸 곳으로 현존하는 국보·보물급 도자기 상당수가 유천리 가마에서 구워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곳은 이미 20세기초부터 학술적 가치가 입증돼 연구·조사활동이 진행됐으나 강진에서와 같은 대규모 발굴조사는 최근에야 이뤄져 가마터 한곳에 보호각을 지어놓은 것이 고작이다.
그동안 농지 경작으로 현상이 변경되고 청자파편의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자료가 흩어져 가마터 보존과 성격규명에 적지않은 지장을 받았다는 게 발굴작업에 나섰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63년 사적 69호로 지정됐지만 현재까지도 보존대책이나 복원·정비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훼손이 심각한 상태. 일제시대 이미 그 가치가 인정된 만큼 해방후 곧바로 보호조치를 취했더라면 원형보전이 가능했으리라는 아쉬움도 크다.
사적 70호로 지정된 진서리 도요지는 상황이 더 나쁘다. 구릉지대 30여개소의 가마에서 순청자와 상감청자·철회청자를 구워냈던 진서리 도요지는 별다른 보존대책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 곳은 과거 도로공사 과정에서 가마터가 발굴됐는데도 불구, 비용문제등 보존상의 어려움을 내세워 그대로 묻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그나마 6백여년간 단절된 청자의 비색을 재현하기 위해 옛 가마터에 터를 잡고 구슬땀을 흘려내는 몇몇 도공들의 노력이 큰 위안이다.
- 청자명인 이은규씨
“전남 강진보다 훨씬 앞선 고려청자의 산지인데도 불구, 복원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해 온 고려청자만의 그 비취색을 되살리기 위해 ‘흙 좋은’청자의 고장 부안 보안면 유천리 옛 가마터에 정착한 이은규씨(李殷奎·48).
유천도요지 복원사업을 행정기관에 수차례 건의해 온 그는 군산 앞바다에서 인양된 청자가 바로 이 곳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더 바쁘다.
충남 공주출신인 그가 연고도 없는 부안에 자리를 잡은 것은 지난 84년.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기 위해 20여년동안 옛 도공들의 자취를 찾던중 가장 우수한 청자를 생산했던 유천 도요지에 터를 잡고 고려시대 제조기법 그대로 아직도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유천 도자기는 두드리면 쇠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납니다”
여러가지 흙을 섞어 만드는 이천도자기와 달리 유천리 도자기는 한가지 흙만 사용하기 때문에 소리가 다르고 수분이 거의 스며들지 않아 음식맛을 좋게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친형인 청파 이은구 선생의 영향으로 흙을 만지기 시작, 경기도 이천에서 인간문화재인 고(故) 해강 유근형 선생에게 5년여동안 청자의 비법을 습득했다.
고려청자에 관해서 그는 이미 유명인사다. 한국관광공사 발행 책자에 표지모델로 나왔고 80∼90년대 TV 방송 시작을 알리는 애국가 배경화면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도자기를 빚던 도공도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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