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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새, 그리고 나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딱새 한 쌍이 찾아와 집을 짓고 있다. 초등학교 안에서 새가 집을 짓고 새끼를 안전하게 키워서 나가는 새는 높은 곳에 집을 짓는 까치말고는 힘들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것들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수많은 눈을 피해가며 새가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새가 집을 짓는 것을 보고, 우리 학교 어디에 지금 새가 집을 짓고 있으니 새집을 건들지 말자.

새도 생명을 어쩌고저쩌고 운운... 하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새가 새 집을 들랑거리는 것을 나 혼자만 보고 있다고 좋아 하지만, 아이들 중에 누군가 새집을 어떻게 했다는 고자질이 금방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저 딱새는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아마 새 집을 거의 다 짓고 알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딱새 집은 우리 학교 이층 변소 바로 앞 처마 밑 홈통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처마와 홈통 사이 아주 작은 틈을 드나드는 것을 나는 변소에서 늘 보는데, 아이들은 키가 작아 그 새집이 보이지 않은 모양인지 보고도 그 곳이 너무 높아 어찌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가 새집으로 마른 풀을 물어 나르고, 새끼에게 줄 벌레를 물어 나르는 것을 함께 보며 신기해하고 싶다.

그러나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저대로 조금만 두면 이제 작은 새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로 어미 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살구나무에 살구가 샛노랗게 익을 무렵이면 딱새 새끼들이 집을 나와 살구나무 가지 사이를 포롱포롱 날아다닐 것이다.

대여섯 마리의 작은 새들이 여린 날개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럴 때까지, 저 딱새가 알을 까서 새끼들이 날아다닐 때까지 안전하기를 나는 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내가 창가에 나란히 서서 살구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작은 딱새들을 보기를....

나는 올해도 2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우리 반 2학년은 모두 일곱 명이다. 이 글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한마디만 하자면 우리 반 일곱 명중에 4명은 이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가 가르쳤다.

아무튼 나는 이 아이들에게 자기 나무 한 그루를 정하라고 했다. 자기 집에 있는 나무든, 자기 동네에 있는 나무든, 앞산에 있는 나무든, 아이들은 금방 자기 나무를 정했다. 경수는 자기 마을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다.

충용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멋들어진 소나무를 자기나무로 정했고, 채현이는 자기 집 뒤 안에 있는 감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 주인이는 자기 집 앞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호영이는 자기 아버지가 심은 살구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고, 은철이는 자기 집 옆집에 있는 자두나무를, 마지막으로 산영이는 자기 집에 있는 은행나무를 자기 나무로 정했다.

우리들은 이제 자기 나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늘 눈여겨보기로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의 나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아침과 저녁 내 나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꽃이 피고, 잎이 피고, 열매가 열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고, 비가 오고! ,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새가 찾아오고, 달이 찾아오리라. 아, 한 그루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은 이제 때때로 자기 나무를 바라 볼 것이다. 집에 갈 때 경수는 그 느티나무 아래 앉아 느티나무 아래를 흐르는 작은 시냇물과 시냇물 건너 작은 들을 보리라. 수많은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기도 하리라.

이 세상에 자연 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생각을 표현해 보는 평화로움을 갖게 하고 싶다. 나무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 새끼를 여럿이 함께 보는 일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 김용택 (시인·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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