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이 만들어진 양식이다. 창극의 역사는 1902년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실제 창극다운 창극이 만들어진 것은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져서 창극을 공연하면서부터이다.
정정렬은 조선성악연구회 결성 초기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사장은 1937년 김창룡이 1년 동안 맡은 것 외에는 모두 이동백이 맡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 상무이사는 정정렬이 1934년부터 1937년까지 맡고 있다. 정정렬이 1938년에 별세했으므로, 죽기 직전까지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상무이사의 중책을 맡아 활동을 한 것이다.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1934년부터 여러 가지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정정렬은 주로 연출과 작곡을 도맡아 했다. 각색은 김용승이 주로 했다. 그러니까 창극다운 창극은 김용승과 정정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때 창극으로 만든 것은 전통 다섯 바탕뿐만이 아니라, [배비장전], [숙영낭자전] 등도 있었다. 특히 [숙영낭자전]의 경우에는 정정렬이 작곡한 것이 박록주를 거쳐 전승이 되고 있다.
정정렬이 주로 연출을 맡았던 것을 보면, 정정렬은 구태의연한 소리꾼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가 구태의연한 소리꾼이었다면 판소리를 연극으로 만든 창극에서 연출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때의 창극은 과거의 창극과 어떻게 달랐는가. 과거의 창극이 그저 여러 명이 무대에 나와 혼자서 불렀던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부른 정도에 그쳤다면, 이 때의 판소리는 확실하게 연극으로 바꾸어 연출을 하고, 연기도 하면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과 대사를 나누고, 배역을 나누어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의 창극은 하루에 다 부르는 것이 아니고, 며칠씩 이어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부터는 완성된 작품의 개념을 도입 하루 저녁에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등에도 신경을 써서 효과를 높였는데, 당시 무대장치, 의상, 소도구 등은 호화로움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창극은 전성시대를 맞이하는데, 이런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정정렬이다.
정정렬은 현대 [춘향전]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창극의 아버지라고도 할 만한 사람이다.
/ 판소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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