胸中政使機心斷이면, 宦海前頭可狎鷗라.
가슴속의 기심(機心)을 끊을 수 있다면 벼슬의 바다 앞에서도 갈매기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성종 때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최경지(崔敬止)가 당시의 권신(權臣)인 한명회를 비웃어 지은 시이다.
'기심(機心)'이란 기회를 틈타 남을 속여 자기에게 이롭도록 일을 꾸미려는 마음을 말한다. 《열자(列子)》〈황제(黃帝)〉편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매일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와 친하게 노는 젊은이가 있었다.
갈매기들은 젊은이의 어깨에도 내려앉고 손바닥에도 내려앉았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에게 갈매기를 한 마리 잡아오라고 하였고 젊은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젊은이가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를 부르자 갈매기는 한 마리도 내려앉지 않았다.
갈매기들이 젊은이의 기심을 알아차린 것이다. 수양대군을 도와 구테타에 성공한 한명회는 생전에 온갖 권세를 다 누렸다. 그리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자연으로 돌아가 앞서 소개한 《열자》속의 젊은이처럼 기심이 없이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의미에서 한강변에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그러나 정자를 다 지어놓고서도 말만 은퇴한다고 할 뿐 권세 욕심에 은퇴를 계속 미루었다. 이에, 최경지는 한명회를 향해 기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압구정에 나가봐도 기러기와 친해질 수 없을 것이라며 위와 같은 시를 지은 것이다.
참으로 뼈가 있는 풍자이다. 그때 그렇게 지어진 압구정이 있는 압구정동은 지금 서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늘 은퇴를 들먹이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열심히 일도 하지 않을 당신, 떠나라!
胸:가슴 흉 狎:친할 압 鷗:갈매기 구
익 連:이을 연 理:이치 이 枝:가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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