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예나 지금이나, 로마나 아테네 그 어디에도 없으나 미(美)를 느끼는 마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을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모두 부질없는 짓일지 모른다."-헨리 데이빗 소로우(H. D. Thoreau)-
아름다움이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모든 것들 안에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거룩함과 연결되어 있다. 때로 거룩함은 아름다움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은 역시 거룩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과 통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펠라기우스(Pelagius)는 바로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지녔던 그리스도교 신학자였다.
그는 4세기 마지막 10년과 5세기 첫 10년을 로마에서 활약했던 영국 출신의 신학자였다. 로마에서 활약할 당시 그는 위대한 인격적 거룩함과 설득력, 지도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렇지만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몇 가지 주장들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그 중의 하나는 여성들에게 성서읽기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찾을 수 있다는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갓 태어난 어린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당시 교회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이 지은 죄를 짊어지고 태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구원에 있어서 하느님의 은총보다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교회는 그를 파문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잘못된 견해 때문에 당시 교회로부터 쫒겨나기는 했지만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볼 줄 알았던 신비가였다.
그는 하늘과 땅을 분리하는 장막을 뚫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적인 한줄기 빛이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짐승들이 숲에서 거니는 것을 보라. 하느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머무른다. 새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라. 하느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머무른다. 이 지구의 온 피조물에는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 살아있는 만물 가운데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그들을 아름답게 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추한 것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는 과학기술의 힘이 지배하는 시대라 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인간은 과거에 생각지도 못했던 편리함과 안락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위험으로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위험은 인간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자연의 무분별한 파괴로 인한 것들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을, 그 아름다움 한 가운데서 빛나는 거룩함을 바라보고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아름답고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소중히 다루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소중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름다움을, 거룩함을 볼 줄 아는 통찰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거룩한 마음이 우리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남종기 (영등동 성당 보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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